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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7. 2018

공감의 정도가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

2017년 2월 7일

한참 전 낸 책이 공대 성향 여자/남자들 (주로 남자) 눈치 없는 것에 대해서 쓴 내용인데, 트위터에서 그런 논리는 그건 감정 노동을 여자에게 다 넘기려는 개소리다 뭐 그런 말을 봤다.    

 

나 자신이 그리 공감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나와 사고 회로가 많이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라다 보니 웬만한 이상함도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편이다. 그나마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공감 능력은 완전 후천적으로 하나하나 학습해서 배운 거다. 예를 들어 난 선물 주고받고 하는 게 이해 절대 안 가고 그냥 싫었다. 타인이 뭘 좋아할지 고민하는 건 그냥 물어보는 것보다 비효율적이고, 선물을 받으면 부담 간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한 관심과 성의를 담았을 텐데 난 이걸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날 이렇게 고민하게 만드는 상대방이 미웠다. 왜 선물을 주고받는지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으며 그 프로토콜의 뉘앙스까지 이해하는데 또 좀 더 걸렸다. 그래서 이젠 선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는 거 아니까 챙겨주려고 하고, 누가 생각해서 사준 선물 받으면 거부감 크게 들진 않는다 (...) '선물 주기 문화'에 대한 설명, 역사까지 찾아서 읽은 사람이다 내가.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소설이나 티브이 드라마 영화 잘 못 봤다. 행간을 못 읽는 편이다. 니가 알아서 이해하라는 소설보다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논픽션을 훨씬 더 선호한다. 눈치 많이 없었다.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럼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감정 노동을 전가한다고 하면 할 말 없다. 아마도 그랬겠지. 나이 먹으면서 이래저래 설명도 많이 듣고, 나도 읽고 배우고, 여러 경험도 하면서 확실히 나아졌다 해도 본질적으로 난 눈치 없고 감정적 반응이 둔하며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데이터 분석 기반인 1인이다. 서른 될 때까지 내 모토가 "니가 말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였다니깐. 그래서 이렇게 지치지 않고 여혐이 뭔지 모르겠다, 여혐이 어딨냐는 사람들에게 설명충짓 하고 있잖소. 모를 수도 있지. 안 보일 수도 있지. 관심 없고 내 인생에 영향 안 미쳤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학교 다닐 땐 성격 때문에 참 피곤했는데 스무 살에 일 시작하면서 내 사회생활은 무지막지하게 편해졌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천지 빼까리로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그들의 사회생활, 연애 생활에서 얼마나 노력하면서도 실패하는지를 자주 보게 되고, 그러면서 겪은 이야기 쓴 게 그 공대 연애글이다. 나 역시 사회생활에서 비슷하게 자주 겪었던 일들이다. 참고로 내가 일 시작한 건 2001년이니까, 공대생 모에화, 쿨한 IT 개발일 이런 콘셉트 나오기 한참 전이었다. 나나 내 친구들이나 왕따 경험 많았고, 사회적인 이해 같은 건 바라지도 못했다.     


인지적인 공감을 cognitive empathy라고 하더라. 난 인지적이고 본능적인 공감력이 아니라서 신경 곤두세우고 노력할 때는 공감 및 배려 프로세스가 돌아가는 데 지치거나 딴 생각 하면 무너진다. 내가 차 끓일 때 다른 사람도 먹고 싶어 하는지 묻는 거, 서른 넘어서야 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잊어버리고 안 물어볼 때도 많다. 차 끓여달라고 부탁하면 당연히 기쁘게 끓여주지만, 알아서 챙겨주질 못한다. 누군가 말을 할 때 "어 그거 아닌데 틀린데"라고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 있는 앞에서 그냥 말하는 것도 서른 넘어서야 좀 고쳐졌다. 정보량이 현저히 낮은 잡담도 의미가 있다는 것 역시 느지막이 배웠다. 아직도 잘 못 한다.     


어쨌든, 여자들이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가 많다는데 그에 빗나가는 표본으로서 살기 힘들었다. 그나마 무심한 남자들은 '남자니까 그렇지'라고 봐주기라도 하지, 여자는 짤 없더라.     

왜 양파 너는 연락 안 하냐고, 왜 페북에서 좋아요 안 눌러 주냐고, 왜 생일에 전화 안 해주냐고, 왜 나만 감정 노동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지만 여러 면으로 많이 모자라다. 내 평생 나보다 감성 풍부한 주위 사람들 보면서, 그들이 보는 세상은, 살아가는 나날들은 나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해했다. 내 몸 상태 안 좋을 때 참을성 없어지고 반응 방식에 짜증이 섞이는 그런 느낌일까? 기쁨도 슬픔도 훨씬 더 강하게 느낄까? 내 인생은 그들의 시각에 비해 좀 무채색인가?     


어쨌든. 양파 너는 상대방에게 감정노동을 다 떠넘기는 악질이라 말한다면, 음. 상대방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거 익히 경험해서 안다만, 그리고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나름 노력한다만, 그래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심장이 말하는 대로 따르라는 조언을 내가 절대 이해  못하는 것처럼, 분석하지 않은 것에는 본능적인 이해가 없는 것처럼, 그 사람도 나를 이해하기 힘들고 원망스러울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무심하니 네가 감정노동 맡아라! 라며 의도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는 거 강조하고 싶다 ㅜ.ㅠ 일부러 무시하는 거 아니고, 왜 화났는지 물을 때는 진짜 몰라서 묻는 거고, 다행히 설명을 들으면 납득하고 체화시켜서 다음에는 그런 실수 안 하도록 노력하려고 묻는 거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그래서 지금까지 답답하더라도 찬찬히 설명해주고 참아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가 결론1.


그리고 답답한 사람 옆에서 고생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 날 수도 있지...가 결론2.     


덧1. 

한국에서도 공대생 모에화가 있다는 거, 그리고 내가 한 말과 비슷한 논리가 무례함이나 무배려의 실드로 쓰인다는 건 이번 일로 또 처음 들었네. 오래 살다 보니 자바스크립트가 서버사이드 되고(이 말도 하도 자주 해서 지겹죠? 전 진짜 못 믿겠어서;;) 무려 아스퍼거 스펙트럼이 모에화도 되고, 나 같은 사람들이 상대방보고 날 이해해줘라 요구하는 날도 오고. 정말 오래 살고 볼 일.     


덧2. 

블로그 시절부터 보신 분들은 지겨운 얘기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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