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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7. 2018

익숙해진 패턴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2017년 1월 27일

모든 사람에게 습관과 패턴이 있다. 걸음 걷기부터 앉는 방법, 씻는 방법, 숟가락 쥐는 방법까지 정해진 궤도 따라, 오토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게 참 많다. 사고방식 역시 사람마다 자신의 네이티브 OS가 있다. 특히 극한 상황이나 힘들 때는 우린 보통 몸에 익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나는 망각이 제일 쉬운 사람이라,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편하게 기억을 놓아버린다. 그게 제일 편하고 자연스럽다.     


이런 개인의 패턴을 버릇이라 한다면, 회사나 단체 같은 조직도 그런 버릇이 있다는 것이 The Power of Habit 책 내용이었는데, 그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후진 경제도 이걸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6.25 전쟁 이후에 완전히 박살 난 한국은 그렇게도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아프리카는 왜 저 모냥 저 꼴이냐, 역시 우리 민족성이 뛰어난가보다라는 자뻑성 의견을 자주 봤다. 아프리카에서도 그런 얘기 많이 나온다. 아시아의 국가들 봐라, 저렇게도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우린 뭐냐.     

이거 상당히 불공평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관심 없을지도 모르는 아프리카 얘기 시작. 재미없으시면 다음 세 문단 건너뛰세요).     


한국에 두 마을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역사가 오래된 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금광이 발견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다. 첫 마을에는 면장이 있지만 절대적인 권력은 없다. 돈을 떼먹으려면 여러 가지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고 이래저래 복잡하다. 두 번째 금광 마을에는 금광 주인이 노예 인력을 부려서 광산을 운영한다. 그 외 필요한 생필품은 옆 마을에서 사들인다. 이 두 마을에게서 돈을 상납 받으려면, 첫 마을은 면장 한 사람 족친다고 안 된다. 시장 시스템을 면밀히 관찰하고 돈 빼돌리는 방법을 잘 생각해 내야 할 것이다. 대신 금광은 금광 주인 한 사람과 잘 얘기하면 된다. 한 달에 한 번 입금 깔끔하게 착 들어온다.     

수탈하던 지배 권력이 두 마을에서 사라졌다고 하자. 첫 마을은 예전대로 계속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두 번째 마을은? 새로운 면장이 부임하자 금광 주인이 살짝 불러서 말한다. 특혜 계속 주는 대신에 내가 돈 좀 찔러주겠노라고. 딱 한 번 눈감아지면 둘 다 아주 편해진다.     

유럽의 제국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를 점령했을 때, 도로를 깔고 산업시설을 설치했으나 (당연하지만) 이건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자선 행위가 아니었다. 광산이나 농장에서 최대한 쉽게 자원을 빼낼 수 있는 시스템을 주로 만들었고, 정부 구조도 위 지배층이 관리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그런 나라들이 독립해서 유럽 보스들이 제 나라로 돌아간다 하자. 새로 권력을 잡는 이에게도 이미 세팅 되어진 시스템은 수탈에 최적화되어 있다. 독재가 쉽고, 찍어 누르기 쉽고, 수탈이 쉽고, 기본 생필품 생산체계는 별로 없고 다 수입해 와야 하며 현지인들의 교육이나 건강 등을 위하는 시설은 전무하다. 그래서 독립 후에 잘 풀린 나라들 보면, 침략 이전에 이미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있고 여러 분야로 활동이 왕성했던 나라들이 많다.  

  

포인트는.     

무엇이든 버릇으로 깔려버리면 그 궤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방송에서 여자들 외모를 가지고 놀려먹는 것이 개그 코드로 정착되었다면 개그맨은 바뀌고 피해자는 바뀔지 몰라도 그 농담 코드는 계속 간다. 그게 기분 나빴던 사람들 역시 똑같은 개그 소재를 쉽게 쓴다. 사람은 그리 창의적이지 않고, 익숙한 것을 곧잘 찾아서 쓰기 때문이다. 이미 박혀있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일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새 사람을 고용할 때도 남자를 선호한다. 바꾸기 귀찮거든. 이미 손에 익은 패턴이 있거든. 소개팅에 실패한 20대 남자는 실패 원인을 주위에서 찾는다. 그리고 주위에는 공기처럼 낭랑한 여혐이 깔아둔, 낯익고 잡아들기 편한 패턴들이 많이 있다. 돈이 없어 보여서. 외제차가 없어서. 그 여자가 김치녀라서. 여자라고 많이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짤린 친구에게 뭐라 위로할까 생각하다 주위에서 곧잘 들은 말을 해준다. 너 남친 잘 벌잖아. 그냥 취집해. 너 이쁜데 어딜 가도 취직되겠지. 쉬는 동안에 다이어트도 할 수 있고 좋지 뭐. 외모도 실력이야.     

남자고 여자고, 직장이나 학교나 방송이나 어디서나, 우리 사회에 깔린 버릇에 익숙하다. 노오오오력 추앙, 없는 사람 멸시, 학벌주의, 여성 혐오, 나이로 꼰대짓 등등. 담배 끊기나 운동 꾸준하게 하기처럼 개인 레벨의 버릇 바꾸기도 참 지겹게 힘든데, 사회 전체에 깔려 있는 버릇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나도 허리 아프지만 자세 고치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조금만 피곤하고 귀찮으면 평소의 자세대로 늘어진다. 개그맨도 뭐 딱히 신박한 소재 생각 안 나면 맨날 하던 외모 비하, 억지 연애라인으로 가고, 부모님도 잔소리 레퍼토리가 그리 다양할 게 없다 보니 결국 결론은 공부 열심히 해라 취직해라 시집가라로 흐른다.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건국의 아버지들이 수탈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물려받으면서 이전 유럽의 지배세력보다도 더 지독하게 피 빨아먹게 된다. 그게 그 시스템의 패턴이고 버릇이라서.     


깊이 패인 패턴대로 계속 가봤자 이전 방식을 답습할 뿐이다.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바꾸는데 의의를 두고, 난 오늘 야채도 더 먹고 운동도 했다. 글도 썼다. 내일은 햄버거 먹고 치킨 먹으면서 폭망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한다. 삶에 절대적인 의미 같은 건 별로 없다 생각하나, 너무 익숙한 버릇만 따라 똑같은 나날을 반복하며 살기엔 삶이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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