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출퇴근길에 Black Box thinking 읽는 중이다. 사람이 실수를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가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건 다른 대중 과학서에서도 자주 다룬 내용이다.
사이비교에서 6개월 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전 재산 다 바치고 세상 종말 디데이 날에 열심히 기도했는데 종말이 안 왔다면? 아 내가 사기당했나 보다 하고 사이비 교주 멱살 잡을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더 신앙이 깊어진다. 이때는 그 사람이 인정을 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면 사실 더 이해하기 쉽다.
내가 틀렸음을 받아들임 -> 전 재산 다 버렸고, 주위 사람 다 잃었고,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도 다 호구들이고, 난 인생 망했음.
종말 올 거였는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신이 구해주심을 받음 -> 내 인생은 아직 가치 있고,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며, 난 실수한 게 아님.
사실 이 이유 때문에 더 '잠재적 아군을 설득 시켜야지' 란 말 무시한다. 이미 한국 페미니즘이 어쩌고 하는 사람, 여성 상위 시대라 믿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거의 무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이 성공해봐야 '아 뭐 그래 인정은 한다' 정도다. 그에 비해 여혐을 한 번 인지한 여자는 다시는 페미니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 내가 당한 이 그지 같은 상황을 난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거 바뀌어야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한 번 눈을 뜨면 잠재적 아군 백 명보다 훨씬 더 답답해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한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여혐은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둘째에게 감기 옮아서 좀 골골하던 중이었는데, 사람이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방탄력도 좀 낮아진다. 어제 뜬금없는 댓글 몇 개 달렸는데 낮에는 페이스북을 막아놓은 터라, 글 쓰거나 답글 달려면 폰으로 해야 한다. 아주 불편하다. 긴 글은 물론이고 답글도 쓰기 힘들다. 정 쓰려면 컴퓨터로 써서 이메일로 보내서 폰에서 복붙해야 한다. 그런데 짜증 나게 싸움 붙는 애가 있었다. 나답지 않게 긴 답글 혹은 포스팅 쓰려고 하다 보니.
1. 별 흥미 있는 주제는 아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고.
2. 그래 봐야 찌질이 한 명 이기자고 하는 건데, 이건 아무래도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효율성 알고리듬이 감정 상태 신체 상태에 영향 받은 것 같고.
3. 거기에 신경 쓰느니 차라리 부엌 바닥을 닦겠다 싶어서
천천히 집안일을 했다. 찌질이 하나 밟아주는 게 뭔 의미가 있나. 그 에너지 있으면 제대로 된 포스팅 하나 쓰지. 자, 뫄뫄야 난 너한테 답 안 하고 나는 지금... 쓰레기 통 비우고 있다. 이게 너 상대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다. 싱크대 치웠다. 이것 역시 너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빨래도 개고 책상 정리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애들하고 놀아줬다.
사는 데에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분배가 필요하고, 싸움도 마찬가지다. 헛소리하는 사람 상대하는 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수는 있는데, 차라리 그 분노 에너지 모아서 포스팅 하나 히트 치면 한 명이 아니라 십만 명, 이십만 명이 본다. 한참 포스팅 마구 쓰던 12월 휴가 중에는 일주일에 총 조회수 75만도 찍었다.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욕구 모아서 괜히 댓글 싸움에 낭비하지 않고, 에너지 투자 대비 최고의 결과를 내는 쪽으로.
너한테 답하느니 삼십 분 더 뛰겠다.
너한테 답하느니 애들 먹일 요리나 하나 더 하겠다.
너한테 답하느니 반가운 댓글 분들과 놀겠다.
벌써 너 이름도 잊어버렸다. 무슨 글이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열심히 찌질하게 여혐해라.
난 이만 또 일주일 준비하러 총총.
* 찾아보실 필요 없어요! 이미 차단해서 댓글 안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