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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8. 2018

사는 데에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분배가 필요하다

2017년 2월 6일

출퇴근길에 Black Box thinking 읽는 중이다. 사람이 실수를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가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건 다른 대중 과학서에서도 자주 다룬 내용이다.     


사이비교에서 6개월 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전 재산 다 바치고 세상 종말 디데이 날에 열심히 기도했는데 종말이 안 왔다면? 아 내가 사기당했나 보다 하고 사이비 교주 멱살 잡을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더 신앙이 깊어진다. 이때는 그 사람이 인정을 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면 사실 더 이해하기 쉽다. 


내가 틀렸음을 받아들임 -> 전 재산 다 버렸고, 주위 사람 다 잃었고,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도 다 호구들이고, 난 인생 망했음. 

종말 올 거였는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신이 구해주심을 받음 -> 내 인생은 아직 가치 있고,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며, 난 실수한 게 아님.     


사실 이 이유 때문에 더 '잠재적 아군을 설득 시켜야지' 란 말 무시한다. 이미 한국 페미니즘이 어쩌고 하는 사람, 여성 상위 시대라 믿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거의 무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이 성공해봐야 '아 뭐 그래 인정은 한다' 정도다. 그에 비해 여혐을 한 번 인지한 여자는 다시는 페미니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 내가 당한 이 그지 같은 상황을 난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거 바뀌어야 하는구나라는 식으로 한 번 눈을 뜨면 잠재적 아군 백 명보다 훨씬 더 답답해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한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고, 여혐은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둘째에게 감기 옮아서 좀 골골하던 중이었는데, 사람이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방탄력도 좀 낮아진다. 어제 뜬금없는 댓글 몇 개 달렸는데 낮에는 페이스북을 막아놓은 터라, 글 쓰거나 답글 달려면 폰으로 해야 한다. 아주 불편하다. 긴 글은 물론이고 답글도 쓰기 힘들다. 정 쓰려면 컴퓨터로 써서 이메일로 보내서 폰에서 복붙해야 한다. 그런데 짜증 나게 싸움 붙는 애가 있었다. 나답지 않게 긴 답글 혹은 포스팅 쓰려고 하다 보니. 


1. 별 흥미 있는 주제는 아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고. 

2. 그래 봐야 찌질이 한 명 이기자고 하는 건데, 이건 아무래도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효율성 알고리듬이 감정 상태 신체 상태에 영향 받은 것 같고. 

3. 거기에 신경 쓰느니 차라리 부엌 바닥을 닦겠다 싶어서 

   

천천히 집안일을 했다. 찌질이 하나 밟아주는 게 뭔 의미가 있나. 그 에너지 있으면 제대로 된 포스팅 하나 쓰지. 자, 뫄뫄야 난 너한테 답 안 하고 나는 지금... 쓰레기 통 비우고 있다. 이게 너 상대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다. 싱크대 치웠다. 이것 역시 너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빨래도 개고 책상 정리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애들하고 놀아줬다.     

사는 데에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분배가 필요하고, 싸움도 마찬가지다. 헛소리하는 사람 상대하는 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수는 있는데, 차라리 그 분노 에너지 모아서 포스팅 하나 히트 치면 한 명이 아니라 십만 명, 이십만 명이 본다. 한참 포스팅 마구 쓰던 12월 휴가 중에는 일주일에 총 조회수 75만도 찍었다.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욕구 모아서 괜히 댓글 싸움에 낭비하지 않고, 에너지 투자 대비 최고의 결과를 내는 쪽으로.     


너한테 답하느니 삼십 분 더 뛰겠다. 

너한테 답하느니 애들 먹일 요리나 하나 더 하겠다. 

너한테 답하느니 반가운 댓글 분들과 놀겠다. 

벌써 너 이름도 잊어버렸다. 무슨 글이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열심히 찌질하게 여혐해라. 


난 이만 또 일주일 준비하러 총총.     


* 찾아보실 필요 없어요! 이미 차단해서 댓글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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