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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7. 2018

왜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냐!?

2017년 1월 31일

한국보다 성폭행이 훨씬 더 빈번한 곳이 많은데 왜 한국 여자들은 그렇게 위험하다 어쩌다 엄살 부리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냐!? 라는 소리를 들어서.     


자라면서 정말 기분 나빴던 경험, 혹은 모멸감을 느꼈든 상황을 생각해 보면 '통제 능력의 상실', '내가 무능력하게 당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깡패에게 얻어맞았으나 무서워서 대들지 못했고, 반 아이들 앞에서 창피당했으나 어떻게 반박할 수 없었고, 왕따 당하면서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런 상황 말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못살게 구는 씬에서는 꼭 폭력이 나오진 않습니다. "너 지금 까부냐??"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데도 어찌 대항할 수 없는 분한 그런 상황으로도 충분하죠. 선생님이 틀린 거 하나당 한 대씩 때리거나 반 전체가 벌을 받는 경우는 아프긴 더 아프더라도 그런 모멸감이나 분함이 덜합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정당한 해결방법이 있느냐 없느냐는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는가, 공정한 처벌이 가능한가, 다른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 손가락질을 해줄 것인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예민한 여자는 성폭행은 안 당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하면 자신이 무조건 손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러므로 옷차림, 귀가길 택시 타기, 술 마시기, 남자 사귀기 다 자신이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밤길에 당해도 늦게 다닌 여자 잘못이고,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냐고 윽박지르는 업계 유명인와의 술자리에서 당해도 여자 잘못이죠. 당하고 고발해도 무고죄 뒤집어쓰기 일쑤고 꽃뱀소리 듣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 '더러워졌다'는 딱지는 요즘에도 아주 유효하죠.     


지하철의 치한. 젊은 여자에게 쉽게 윽박지르는 남자 어른. 여직원이라 만만하게 보는 손님들. 어린 여자에게 애교 좀 부려라 압력 넣을 수 있는 어른들. 엄마를 때리는 아빠. 나를 때리는 오빠 혹은 남동생. 어린 시절 협박을 섞어가며 성추행한 남자 어른들, 동네 오빠들, 남자 사촌들. 듣기 싫은 섹드립하며 웃기를 강요하는 선배들. 젊은 년이 어쩌고 하면서 한 대 칠 듯 협박하는 수많은 진상들. 고압적인 택시 기사 아저씨. 여자가 전화 받는다고 성적인 욕을 퍼붓는 사람들. 몰카를 찍어서 배포하는 사람들. 반박할 방법 없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모든 경험이 시커먼 두려움(누구는 피해의식이라고 하겠지만) 으로 뭉칩니다. 

강간은 안 당했을지 모르지만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상황에서 주변인들은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따지는 자신만 프로예민러가 된 경험은 많거든요. 지하철에서 엉덩이 만지고는 내가 뭘? 하는 뻔뻔한 남자는 만나봤거든요. 한 대 칠 듯이 손을 올리자 움츠려드는 여자를 보고 비싯 웃는 남자는 경험해봤거든요. 젊은 여자에게만 지팡이 휘두르는 어른, 헤어지면 너랑 네 가족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남자 흔하거든요. 그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이나 방법은 없었거든요. 호소해도 니가 행실 잘못해서, 약해서 당한다는 소리나 들었거든요. 김치녀 맘충 어디를 찢어 죽여 버리고 싶다 소리 들어도 니가 그렇게 행동 안 하면 되는데 그게 뭔 문제냐, 왜 예민하냐는 핀잔만 들었죠.     


여자라서 당하는 그 일상적이고도 흔한 폭력이 너무 잦아서 쉴드를 엄청나게 세우고들 살아오며 생긴 피해의식. 언제 그 피해의식이 없어집니까? 언제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 없어집니까?     

주위 사람들이 다른 남자들의 여혐 욕을 제재할 때 조금 덜해집니다. 직장의 '섹드립' 선배가 상사에게 한 소리 들을 때 덜해집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가해자가 나쁘다고 확실히 해주는 신문기사를 보고 덜해집니다. 권위를 이용해 성관계를 요구한 예술계 저명인사가 처벌받을 때 덜해집니다. 성추행이 얼마나 저열한 짓인가를 다들 한 목소리로 성토할 때 덜해집니다. 고발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고 가해자가 잘릴 때 덜해집니다. 완전히 없어지려면 갈 길이 멀지만, 조금 나아지긴 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무력하게 당하지 않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내 주변인들도 다 이것이 나쁜 짓임에 동의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확신이 들면, 주변 사람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잠재적 지원자가 됩니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으셨나요? 가해자 취급해가며 조심해야 하도록 만든 사회 분위기 잘못입니다. 그게 앞에서 걸음 빨리하는 여자 욕하고 윽박지른다고 나아지진 않겠죠.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아 너무 기분 나쁘신가요? 그럼 그렇게 조심하는 여자들이 조심 안 했을 때, 그래서 당했을 때 어떤 취급 받나 보세요. 피해자 입장에서 잘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도. 그리고 그게 그렇게 싫으면 여자들이 잠재적 지지자로 볼 수 있도록 노력 좀 해 주세요.     


- 글이 길어져서 뺐습니다만 - 

비행기 여행이 차 타기보다 비교 불가능하게 더 안전하지만 비행 공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내가 어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고,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죽는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능성이 더 낮더라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해결이 불가능한 일에 공포를 더 느끼기 마련이고, 같은 이유로 테러리스트에게 죽는 미국인보다 총기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대중의 공포는 이해하기 힘든, 통제 밖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훨씬 더 무서워합니다. 숫자로 보면 병원에 갔다가 치료 잘못 받아서 죽는 게 제일 무서워야 할 텐데...;;     


결론. 

여성들에게 여성혐오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 정당하게 처벌이 가능하고, 번거롭기는 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의 사건이라는 확신이 들면 공포도 훨씬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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