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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8. 2018

내 패션과 인테리어에는 나름의 테마와 소신이 있다

2017년 2월 14일

저번 주에 남편 회사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피자 잘 얻어먹고 나가면서 그랬단다. '근데 난 (선배가) 솔직히 골드만에 오래 있었고 부부 둘이 맞벌이면 훨씬 더 집이... 음... 아니 뭐 소박해서 좋다고.' 이 시끼가.     


몇 년 전에 이모가 영국에 동료분들과 오셨을 때 나를 소개시키시면서 그랬다. '얘가 옷은 이렇게 차려입고 다니지만...' 아니 이모님.     


근데 그러고 보니까 어릴 때도 그랬다. "얘가 패션 센스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진짜 기억력 없는데 그때 무슨 옷 입고 있었는지, 걔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난다. 뭐 그래 인정한다. 보라색 레이스 공주 소매 꽃무늬 블라우스였다. 사촌 언니한테 물려받은 거지만 내가 보기엔 이뻐서 입은 거였는데 그런 소리 들어서 나름 충격이었음.     


어쨌든 이렇게 테마가 꾸준하다. 일관적인 양파 같으니라고. 꾸미는 걸 못한다. 한국 드라마 보면 아무리 돈 없어서 죽겠다는 여주라도 같은 옷 두 번 안 입고 방은 늘 깔끔하고 센스 있게 꾸며놨던데 왜 우리 집은 이 모냥이지. 왜 난 같은 한국 사람인데 이모냥이지. 왜 난 무려 김밥도 이쁘게 못 싸지.     


옷을 일부러 못 입으려고 그러는 건 당연히 아니고, 사실 내가 옷 사는 데에는 아주 확실한 철학과 테마와 소신이 있다. 빨기 쉬운 거, 안 다려도 되는 거, 가방에 구겨 넣기 쉬운 거. 그 세 가지 요구사항이 넓디넓은 패션의 세계를 단숨에 확 줄여준다. 

면 종류로 건조기에 넣어도 되는, 줄어들어도 되는 넉넉한 사이즈의 옷. 어두운색, 밝은색 정도로만 나눠서 빨아도 되도록, 검정색 회색 갈색 남색 그룹과, 조금 더 밝은 색 그룹으로 나누면 된다. 하지만 민자는 너무 밋밋하니까, 나의 개성과 취향을 살려서 줄무늬 혹은 동물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와 스웨터를 선택한다. 가끔은 두 개 다 있는 것도 산다. 예를 들어 줄무늬 위에 고양이. (이전 포스팅에서 이런 티를 볼 수 있다!) 내가 남자였다면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을 것이다. 민짜는 너무 밋밋하지만 체크는 그래도 좀 패션이 들어갔고, 뭐 묻어도 잘 표시 안 나고, 티 아니고 셔츠니까 그럭저럭 차려입은 거고, 안 다려도 좀 표시 안 나지...않나? 

하의는 원래 청바지였는데 치렝스라는 신세계를 발견한 이후로 그냥 치렝스를 이마트 등에서 종류별로 구입했다. 검정색과 회색의 두 가지 색깔로 다양한 상의 색깔을 커버 가능하도록 하고, 기모, 융 등의 이너로 효과적인 단열을 꾀하면 된다. 무지 편하다. 

차려입어야 할 때는 원피스로 간다. 코디고 매치고 할 필요 없이 드레스 하나에 아우터 하나만 입으니 완전 편하다.     


우리 집이 참 없어 보여도 그래도 나는 인테리어에 아주 확실한 철학과 테마와 소신이 있다 (...). 내구성 문제로 내 시간 안 잡아먹음을 품질 기준으로 하고 나서 최하의 가격 아이템으로 주로 IKEA 템이다. 어차피 내 안목 없는 거 세상이 다 아는데 괜히 비싼 거 사서 실패 비용 높일 필요 없고, 게다가 내 방랑벽 고려할 때 곧 이사 갈 거고 버릴 거니까 열심히 고민해서 잘 해놔봐야 다 필요 없다. 수납공간이 짱이다. 청소하기 쉬운 게 짱이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내가 아무리 꾸미고 해봐야 no one gives a shit. 누가 상관하리오. 내가 살기 대강 편하면 되고 사람 초대 안 하면 되지 (...) 

   

얼마 전에 뉴스에서 SNS를 보면 우울해지는 사람이 많다 하던데 또 깨달음이 왔다. 난 SNS 봐도 우울해질 일이 없다. 왜냐면 내 페북 피드에는 뉴스만 뜨기 때문이다. 왜냐면 내 실친들은 페북 거의 안 쓰는 애들이 대부분이고, 쓴다 해도 뉴스 공유충들이 압도적이다. 자기가 어디서 뭘 먹었는지 뭘 했는지 어디 갔는지 얼마나 이뻤는지 이런 거 올리는 친구 거의 없다. 페북 계정도 없는 친구, 있어도 로긴 안 하는 사람 (=>우리 남편이라든지)이 태반이고 인스타그램 이런 건 컨셉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나도 좀 그렇다). 부러워하려고 해도 부러워할 친구가 없...;; 아 이게 진짜 자랑이 아니야.  

   

하지만 나도 늘 이렇게 살고 싶진 않거든. 오늘 점심시간에 옷 잘 입는, 혹은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 얘기가 나왔다. 나도 로망이 있다. 뭔가 좀 문학하는 사람들, 예술하는 사람들, 아니면 상경계 파워 피플들이 우글우글한데 가면 분위기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나도 좀 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뭔가 좀 고상하고 예술적인 그런?     

내 동료는 내가 입고 있던 남편의 구멍 난 회색 셔츠와 깔맞춤한 회색 치렝스, 까만 양말과 흰 운동화를 훑어보더니, "주위 사람 탓할 거 없고, 넌 그냥 타고난 것 같아"라고 모욕했다.     

한국 가서 옷 왕창 사서 입고 올 거다.     


덧: 

옷 쇼핑 싫어하게 된 데에는 체형 때문에 이것저것 입어보기 귀찮음도 한몫했는데, 그래서 한국 한 번 가면 옷도 꽤 사고 머리도 하다 보니 한국 갔다오면 오 때깔 좋아졌어! 소리 듣는다. 한 달 정도 간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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