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8일
나에게 '원래 말투가 이랬어?', '이 사람 꼬인 사람이네', '실망했습니다' 하는 댓글 지난 며칠 보고.
최근에 이랑 씨가 한국대중음악상 받으시면서 한 퍼포먼스가 이슈가 됐었다.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도 공개하셨던데, 난 이런 얘기 들을 때 부끄러운 감정 먼저 앞선다. '돈 되는 거 해야지 왜 안 되는 거 해놓고 불평이야'라는 식의 댓글이 많았다는데, 나는 바로 내가 내 자신에게 그런 말 하면서 빠져나갔다.
책 한 권 내면 인세 이백 전후로 받는다. 정말 초창기에 300 정도 받았는데 요즘에는 훨씬 더 열악하더라. 책 한 권 쓰는 데 시간 많이 걸린다. 그때 내가 시급을 계산해보니까 시간당 몇백 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세상에게 돈 내놓으라 하는 건 힘든 일이란 걸 난그때 배웠다. 그보다는 번역은 시간이 훨씬 덜 걸리고, 남을 대신해서 남의 글을 쓰면 돈을 더 받았다. 프로그래밍은 훨씬 더 많이 받았다. 난 프로그래밍에 공부, 글쓰기만큼은 관심 없었지만 그럭저럭 잘 했고, 앞으로도 잘 풀릴 것 같아서 그쪽으로 갔다. 책은 내는 대로 줄줄이 망했다(...). 내가 낸 책 중에서 재판 된 거는 아마 전문대 교과서 집필 시절 낸 영어책 - 그 학교 전용 프로그래밍 교과서 몇 권 - 밖에 없을 거다 냐핫(피눈물 흐르고 있음). 그나마 번역 일도 직장일이 빡세지면서 관뒀다.
10대부터, 그리고 20대 내내 나는 글을 썼고 그건 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요즘에 글 잘 쓴다 못 쓴다 얘기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누구는 좋다 누구는 나쁘다 하겠지만 어쨌든 난 시장성은 없는 사람이었고, 생계유지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난 그냥 다른 분야로 샜다. 포기하고 내뺐다. 버틸 배짱도 자신감도 없었고 마침 돈벌이가 쉬운 쪽으로 내빼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정말 즐겁게 쓸 수 있는 글, 시장성 고려 하나도 안 하고, 입금 수익 걱정 하나도 안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글 쓰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이건 글쓰기가 생업이 아닌 자의 사치고 교만이다. 글로 판단 받는 게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둔감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내 글을 비난한다고 해서 나는 사과할 필요가 없고, 태도가 어떻게 하는 데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본론) -> 이봐 이봐. 서론이 이렇게 길어도 된다니. 진짜 지 맘대로 쓴다. 쿨럭.
글을 오래 쓰면서 배운 것. 나는 상품이다. 내가 돈을 벌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는 인터넷에 넘치는 콘텐츠 중 모래알 하나일 뿐이다. 나를 꾸준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편적으로 내 글 하나 두개만 마주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런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정말 누구인지는 의미가 없다. 그저 글 하나로 그들과 잠깐 접점이 생겼을 뿐이다. 나에게 그들의 의견이 별 의미가 없듯이, 그들에게도 나라는 사람은 별 의미가 없다. 오랜 블로그 활동으로 친해진 사람들에게 빼고는 의미 없는 글쓰기를 하다가, 갑자기 목표와 방향이 생긴 게 페미니즘 관련 글쓰기 시작하면서. 그저 내 만족을 위한, 나와 친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글로만 여러 사람에게 닿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훨씬 더 소모성 콘텐츠가 된 셈이다. 뭐, 이왕 그렇게 된 거 계속 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제일 의미 없고 시간 아까운 짓이 자기변명이다. 철저한 소모품으로 '양파'라는 작가는 별 의미가 없고, 그가 생산해내는 콘텐츠만 의미가 있어서이다. 말투가 왜 이렇냐 욕하는 것, 얘 원래 그랬냐, 실망했다 등등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콘텐츠의 영향력을 갉아먹는다면 고려하겠으나 내 기분이 상해서, 혹은 나에 대해 실망했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돌려세우기 위한 변명을 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니가 오해한 거고 어쩌고. 어차피 글은 협상이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은 그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소비한다. 나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여혐 관련 글 몇 개라도 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가장 편한 방법으로 하는 것. 길게 보면 나한테 편하고 쉬운 게 제일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니까.
그냥 내 모습으로 사는 게 제일 힘 덜 들고 편하다. 내 방식대로 살면서 최대한 전략적으로 메시지는 퍼뜨리고, 몇몇의 지적에 변명하는 에너지 낭비는 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길게 가는 것. 그게 목적.
그러므로 -
"원래 말투가 그랬어?" ->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이 사람 꼬인 사람이네" ->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실망했습니다" -> 뭐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죠. 좋은 하루 되세요. 멀리 안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