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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4. 2018

본능적 구분 시스템의 오류에 대한 인정

2017년 3월 11일

한국 문제 전문 교수가 생방으로 BBC와 인터뷰하는 중에 애들이 들어왔다. 어떤 여자가 잽싸게 들어와서 애 둘을 데리고 나갔다. 그걸 보고 댓글에 보모 혼나면 어쩌냐는 식으로 댓글이 달렸다. 애 엄마로 안 보고 보모로 봤나보다. 인종차별이다 할 수 있는데, 미국 사람이라면 멕시칸 보모가 흔하다고 하니 그런 보모로 봤을 수 있겠다.     


우리 둘째는 눈이 파랗고 머리색이 연하다. 큰아들은 눈이 갈색 녹색 섞인 색이지만 멀리에서는 그냥 갈색으로 보이고, 머리색은 까맣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둘 다 나를 하나도 안 닮았다. 솔직히 둘째는 태어났을 때 머리 색깔이 좀 빨간 편이었는데 간호사도 읭? 했다. 응 애기가 지금 니 배에서 나온 거 맞긴 맞는데...? 그래서 농담했다. "남편이 빨간 머리 여자랑 바람폈나 봐요." 웃지도 않더라. 힁.     


런던이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등하교 도우미도 엄청 많고 오페어 내니 등등도 넘쳐난다. 아이 엄마는 보통 두 부류로 나뉘는데 20대 초중반의 젊은 엄마들도 있지만 40 전후의 좀 든 엄마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 등교시키는 사람이 20대면 곧잘 오페어, 애 두셋 있거나 나이가 확 많아 보이면 등하교 도우미려니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스페인 쪽이나 동구권으로 보이면 그렇다.

 난 등하교 거의 안 시키다 보니까 어쩌다가 부모 모임에 가도 '아 판다군 엄마...세요??' 라는 사람들 많다. 안 닮았거든. 등하굣길에 인사 잘 안 하는 사람도 많다. 이건 나도 그렇다. 데려다주는 사람이 엄마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서, 괜히 말 걸었다가 '아 저 엄마 아닌데요' 소리 들으면 뻘쭘하잖소.   

  

뭐, 나도 다른 엄마들 보면서 진짜 엄마인지 오페어인지 넘겨짚곤 하니까, 다른 사람도 날 보고 비슷하리라 생각. 특히나 애들이랑 안 닮아서 더. 그 교수 부인을 보모로 본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백인 가정의 아시아계 여자는 보모라는 이미지가 뇌에 쌓여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너 최악의 인종차별주의자! 이런 건 아니지만.     


결론. 

사람의 뇌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구분 엔진이다. 인종과 성별, 옷차림 등등으로 1초도 되기 전에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이건 사람이라면 모두 하게 되는 자동 시스템이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사회적 문제가 생기긴 하나, 이론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 알아도 본능적인 구분을 고치기는 참 힘들다.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 나쁜 사람이라고 욕먹을까 괜히 쫄아서 방어적으로 나오지 말고, 어 나도 그런 무의식적인 인종 프로파일링을 했네. 왜 그랬을까 정도만 되어도 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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