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8일
"그렇게 남자를 적대적으로 대하면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어쩌고 하는 개소리.
"듣는 사람 기분 좋게 말하면 더 설득이 쉽지 않을까요?" 라는 개소리.
저번 강남역 살인 사건 때에 이건 여혐 범죄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니네 왜 우리들한테 그러냐고 하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때 그 사람들을 설득시키려고 다들 투자한 시간을 더하면 몇백만 시간 될 거다.
시간이 흘러 흘러 며칠 전 LA 에서 한국 남자가 한국 여자에게 망치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물론 한국 언론은 "묻지마 사건" 어쩌고 했지만 미국에서 "증오범죄, 혐오범죄"로 확 낙인찍어주니 쭈그러들었다(물론 오유에서는 사람이 저렇게 다쳤다는데 "아이고 메갈들 신나겠네"가 첫 댓글. 한국 사람이냐고 물은 거지 한국 여자라고 묻지 않았으니까 혐오 범죄 아니라고들까지. 할많하않.).
몇백만 시간의 조곤조곤 설득 vs 미국에서 증오범죄로 땅땅땅.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게거품을 물고 덤비는 이들에게 아니요, 페미니즘은 남혐하자 그런 거 아니고요 라고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게 설명했던 사람 4673237543명, 그에 투자한 시간 몇백만 시간. 그래도 아 몰라 닥쳐 메갈 너 뚱뚱하고 못생겼지?? 로 답하던 이들. 문재인 씨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하니까 '니네가 제대로 된 페미니즘을 안 하는 거고 엣헴 페미니즘 자체가 나쁜 건 아니고 엣헴' 들어갔다.
몇백만 시간의 조근조근 설득 vs 문재인 씨의 페미니스트 선언 몇 분.
된장녀란 단어 막 쓰는 거 좋지 않고, 듣는 사람 불편하고, 김치녀란 단어도 그렇고 어쩌고 저쩌고 조곤조곤 설명한 사람 2346443532명. 역시 몇백만 시간의 인내심 만빵 설명과 설득으로도 아 됐어, 너 김치로 일관하더니, 그 대단한 성형외과 전문의도 트위터에서 밟히고 며칠 만에 사과문, 그리고 신문에서 "어머 너 김치공장이라는 말 썼어?" 나가자마자 하루 만에 트위터 블로그 등 SNS 다 갈아엎고 동아일보 연재도 취소됐다고 한다.
몇백만 시간의 조근조근 설득 vs 언론에서 "헉 너 진짜 그랬어?" 기사 몇 개.
몇십 년 동안 여자들 눈이 높아서 큰일이네, 왜 쓸데없이 공부 많이 하냐, 농촌들 총각은 어쩌냐 하던 꼰대들 23467432명. 그거에 대꾸 못 하고 속으로 열불만 나던 여자들 94375472명. 그런데 그 얘기 공개적으로 한 국가 연구원이 언론에서 개박살 나고 곧바로 사퇴했다. 이거 본 사람들 앞으로 최소한 공적인 자리에서는 고스펙 여자가 어쩌고 쉽게 말 꺼내지 않으리라 믿는다.
몇백만 시간의 솔로로 열불 삭히기 vs 전국적인 "미친 거 아냐??" 분노.
이렇게 수백 개도 나열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몇백만 시간이 소용없었냐 하면 아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전국적으로 담론화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소라넷 본다는 말 쉽게 못 하고, 몰카 본다고 하면 공개적으로 두들겨 맞을 거 알고, '여자가 꼬셨어요'란 변명이 경찰 조사에서 통할진 몰라도 연예계에서는 팬덤 우수수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멈출 때가 아니다.
영미 권에서 모성신화 문화가 제대로 발동 걸린 건 아주 오래전이 아니라, 강려크했던 60~70년대 페미니즘 물결이 지나간 80년대부터 미디어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 페미니즘 운동 가담했던 이들이 도대체 왜 그런지 이해를 못 하는 이유다. 아냐 난 가정의 어머니 역할이 제일 아름답고 좋아. 엄마로 사는 게 제일 중요해. 세상에서 엄마로서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아이들을 위해서 나 자신은 갈아 넣는 게 옳아. 날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가 부양하는 가족 안에서 아이 둘 낳고 완벽한 엄마로 살고 싶어... 이거, 진짜 정말 페미니즘 운동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본격적으로 몰려온 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변화가 엄청 빠르다는 거 알고, 페미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그 분위기 차이에 적응 못 하는 것도 이해한다. 내가 겪어온 해외에서의 변화, 약 2000까지의 몇십 년 치 페미니즘을 지난 2년 동안 대중들에게 보인 셈이고, 요즘처럼 정보 교환이 빠른 시대에서 한국 젊은 여자들이 보고 원하는 유럽/북미 사회는 거기에서도 17년 더 지나가 있다. 그곳에서조차 80~90년대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고, chairman을 chairperson으로 고치자 이런 말도 정신병자 프로 불편러, 꼴페미 소리 들었다. 2000년도에도 성희롱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예쁘다는 칭찬도 여혐으로 보는 분위기는 2010년 전에는 그저 여성 잡지 기고문 정도에서나 봤을 거다. 이걸 지금 한꺼번에 휘리릭 돌려서 소화시키려니 멀미 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멈추면 정말 몇십 년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쉽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다 반세기 전 60년대엔 여자들이 미니스커트 입고 대학 다니던 동네였다. 한국에는 강려크하기 짝이 없는 이슬람 종교가 없으니 그 정도 퇴행은 힘들지 몰라도, 된장녀·김치녀 등등으로 여자들 본격적으로 후려치기 시작한 것도 지난 10년+ 이었다. 여성 상대 범죄와 여러 폭력은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여혐 등으로 오히려 더 늘었다.
전 세계가 같이 변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도 이 정도로 거센 페미니즘 운동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놓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성신화, 된장녀 김치녀 맘충 말고 어떤 거지같은 프레이밍이 나올지 모른다.
이왕 같이 파도 타는 거 같이 한꺼번에 휙 갑시다. 한 사람 한 사람 조근조근 설득시키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효과는 위에서 보시다시피 언론에서 때려주면, 높은 자리 사람이 한 번 확 밀어주면, 1:1의 수백만 시간의 설득보다 훨 빠르죠. 우리 벌써 몇백만의 조신한 조언은 엄청 해뒀습니다. 그래서 다들 동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여혐이 뭔지는 압니다. 지금부터는 개인과외식의 조곤조곤 설득보다 우르르 쾅쾅 푸닥푸닥 몇 번이 낫습니다. 분노도 에너지잖아요. 말 안 통하는 사람은 버리고, 그 주위 분위기를 바꾸는 쪽이 빠릅니다. 민원 넣고 이의 제기하고 항의하고 정치인들 공약에 반응하고 여혐 허용하는 학교에 항의합시다.
이제 한 건 한 건씩 이기고 있습니다. 타이밍 맞을 때 주춤하지 말고 갑시다. 우르르 쿵쾅 푸닥푸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