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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0. 2018

진정한 페미란 무엇인가

2017년 3월 25일



저는 늘 제목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뭐 대단하게 인간 존중 이런 것보다,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 대강 뭉뚱그려서 진보라고 하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진보주의자가 되겠어! 진정한 진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 찾아보고 진보 십계명 매일 외우겠어! 이런 거 아니잖아요?     


여성은 세계 인구의 반입니다. 이들이 역사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온 건 사실이고 그로 인한 연대감이 생길 수는 있는데, 그렇다 해도 우리는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삶을 다르게 살아왔겠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라는 이유로 뭉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얼마나 성차별이 만연한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우리 그렇게 다르게 살아도 박근혜 씨에 분노해서 뭉친 걸 보면, 좀 엔간히 해 먹지 도대체 얼마나 해 먹었으면 백만 명이 주말마다 들고 나왔겠냐 생각 들잖아요.       


전 고기를 먹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미친 듯이 고기 좋아했어요. 아침부터 고기고기. 그래서 '고기 비린내' 이런 말을 정말 하나도 이해 못 했어요. 그러다가 임신을 했는데.... 뙇! 어느 날 갑자기 고기 냄새가 나는데 토할 것 같더라고요. 고기를 가지고 '사체'라는 단어 쓰는 데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으나 딱 그 순간에 깨달았어요. 아, 이래서 그렇게 말하는구나. 타는 냄새가 정말 구역질 날 수도 있구나. 거 참 이상하죠. 비린내 나는 생선은 잘 들어가는데 고기를 못 먹겠는 신기한 경험을 그때 했습니다. (물론 애 낳고 나서 원상복귀 -_- 했지만 이전만큼 먹진 않아요. 축산업에 대해서 책 읽고 나서 좀 더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은 나이 들어가고 아이 낳고 나서 그냥 몸에 덜 땡기는 거 같기도 해요.)     


혹시 donor fatigue라는 말 아세요? 정외과에서 배운 말인데, 선진국에서 몇십 년 동안 계속 아프리카에 원조를 해줬지만 별 성과가 없으니 '퍼주기도 지친다' 느낌이 퍼졌다네요. 전 사람의 공감 능력도 제한이 있다 보니까(개인차는 있을지라도) 한없이 다 느끼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100이 있는데 내 가족 내 친구를 위해서 보통 반 이상 쓰고, 내 동료, 내 주위 사람, 길냥이, 조카, 옆집 이쁜 애기 뭐 이런 식으로 갈 수 있겠죠. 

자, 여기서도 편견이 드러나는데 저는 강아지보다 냥이를 더 좋아합니다 쿨럭.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자기에게 가까운 문제부터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면 donor fatigue가 나타나죠. 그것까지 내가 챙겨야 하냐 vs 어떻게 사람이 안 도와줄 수가 있냐라는 선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런던에서 테러 사건이 있었죠. 이건 정말 마음 쓰이지만 같은 날짜에 중동에서 난 테러 사건은 다들 잘 모르죠. 세월호 인양은 정말 마음 아프게 보고 있지만, 러시아 내의 정치적인 억압 이런 데에는 아무래도 마음 안 갈 거고요.     


페미니스트 선언을 안 하는 남자라고 해서 나쁜 남자로 보지는 않고, 동물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페미라고 해서 나쁜 페미로 보진 않습니다. 싸워주면 물론 좋지만요. 다들 자기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페미라는 건 없고 그런 거 정의하려는 것도 별 의미 없다가 제 보통 모토이고, 당장 나나 내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불의를 싸우는 게 사람의 본능이라고 봐요. 꼭 페미라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라고도 생각지 않고요. 

촛불시위 때도 보셨잖아요. 촛불 들었다고 다 같은 마음입니까? 그나마 내가 원하는 탄핵을 위해서 같이 서준 데에 감사하고 그냥 가는 거죠 뭐. 사람 공감 예산이 정해져 있는데 그중의 얼마를 할애해서 내가 원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써주는 거, 거기에 감사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으려고요.     


글 길어지면서 꼰대화 되는 것 같아 스톱...하기엔 이미 길군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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