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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9. 2018

'철벽녀' 단어는 여혐인가

2017년 4월 17일

‘고릴라킹’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나는 그걸 볼 생각이 없다. 그런데 영화 제작자가 자꾸 묻는다.      


"왜 보기 싫어? 킹콩은 좋았다면서?" 

"한 번만 봐봐. 좋아할지도 몰라." 

"싫어도 봐. 괜찮을 수도 있어. 시작 부분 십 분만 봐!"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니야?" 

"킹콩도 유치한데 그건 좋았다면서, 그럼 유치한 거 좋아하는 거네? 눈 높은 것도 아니네!" 

"이거 안 보면 뭐 할 건데? 지금 어디 갈 건데? 딴 영화 볼 거야?" 

"영화 평생 안 볼 거야?" 

"저번에 본 영화 보니까 별거 아니던데, 왜 이 영화가 보기 싫은 건데?? 차별해? 왜 이건 안 돼? 얼마면 돼?? 조조할인이면 봐 줄 거야??"     


아니, 그냥 그 영화 보기 싫다고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왜 싫은가에 대한 마라톤 토론도 하기 싫고, 그냥 다른 영화 보고 싶다고오오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화 다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내 취향 욕 얻어먹을 필요도 없고, 어떤 다른 영화를 좋아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잖아? 그냥 싫다고. 그냥 보기 싫다고.   

  

자, 이런 사람들을 총칭해서 '철벽인'들이라고 하자. 영화감독 입장에서는 지독히도 내 영화 안 봐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철벽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다른 영화는 재미있게 볼 수도 있고, 혹은 그냥 영화 자체를 별로 안 즐길 수도 있다. 진짜로 유치한 취향일 수도 있고 엄청나게 고상한 취향일 수도 있다. 그들의 취향을 분석해서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저런 식으로 계속 질문하면 듣는 사람 짜증 나죠. 왜냐면 그저 좋다 싫다 말 했을 뿐인데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내가 '철벽인'이 되었고, 내가 그냥 별로 안 땡겼던 영화에는 '거절당하는 영화' 뭐 그런 명칭 안 붙었잖소? 이유 없이 거부하는 내가 문제인 것처럼 하잖소?     


이건 사실 나는 젊어서도 연애 거의 안 하고 곧바로 결혼해서 잘 이해 못 했던 부분 중에 하나다. 난 총각들이 '왜 여자들은 그렇게 까다로워서 나를 거절하는가' 한탄을 훨씬 더 들었고, '철벽녀'를 비하의 뉘앙스보다는 '공략하기 힘든 상대', '만만하지 않은 상대'로 받아들였고, 그건 나쁜 말은 아니지 않나 했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유래를 알게 된 영어 단어 friendzone. 이것은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를 그저 '친구'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뭐 딱히 악의는 없는 거 같은데 이 단어는 그 후 십 년 정도를 거치면서 어장 관리하는 나쁜 년들의 행동거지로 바뀌었다(원래는 friends 시리즈에서 나온 말이란 걸 배웠음). 간단히 말해서 '나랑 안 자주고, 친구의 이점만 쏙쏙 뽑아 먹는 여자'. 

보통은 용기가 없어서 고백을 못 했거나, 거절당하고도 그냥 친구로 남기를 선택한 경우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의도를 모르거나, 아니면 이미 듣고 거절했다. 그런데도 여기서 나쁜 사람은 여자다. 남자가 호의를 보여주셨는데도 같이 안 자주는 여자가 때려죽일 상대가 된다. 이건 싱글 여자들이 아주 흔하게 겪는 반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거절당한 남자들은 아주 쉽게 공격적으로 돌아선다. 내가 너한테 잘 해줬는데 왜 넌 나랑 섹스 안 해줘. 이걸 좀 오래 겪다 보면 '철벽녀'란 호칭이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거. 하지만 나 같은 여자 포함해서 다른 이들은 아직도 '칭찬'으로 별 생각 하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는 거.     


결론이 없어서 혼란이 있는 듯하여 -> 

철벽녀라는 단어 자체가 엄청나게 여혐이다 이런 건 아니지만, 여성들의 거절을 '까다로운 여자'라는 식으로 프레임 씌우는 데에 자주 쓰인다는 제보가 있었음. 그리고 (연애 경험 별로 없는 나야) 칭찬으로 들을 수도 있지만, 그런 지적/비판을 자주 듣는 싱글 여자 입장에서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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