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0일
(역시 런던 돌아오니 포스팅 폭발 ㅋㅋㅋ)
철벽녀란 컨셉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 헤픈 여자/어장관리녀/철벽녀 프레임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철벽녀라는 단어 자체가 여혐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저 그 단어가 여성의 거절을 캐릭터화하는데 쓰인다는 것 뿐)
소위 철벽녀는 사실 유머로 소비될 때도 좋은 쪽으로 비친다. 좀 둔해서 남자가 작업 거는지를 모른다던가,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습관적으로 여지 1도 주지 않는, 그래서 공략하기 힘든 상대로 나온다.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들은 거의가 철벽녀다. 실제로 연애를 고파하고 로맨스를 즐기는 여성이더라도 자신을 철벽녀로 보는 경우가 많다. 철벽녀가 아니더라도 철벽인 것처럼, 둔해서 남자가 거는 작업을 몰랐던 것처럼 나오기도 한다. "정말 나를 좋아한다고?? 몰랐어!!" 이런 내숭으로. 그런데 여성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 반대의 이미지는 '헤픈 여자' 혹은 '어장관리녀' 이니까 그렇다. 헤픈 여자와 어장관리녀의 차이라면 헤픈 여자는 같이 자'주'고, 어장관리녀는 자'줄' 것 같으면서 안 자주는 여자다. ('주는'에 포인트가 있다. 이 프레임에서 여자는 남자를 이리저리 재다가 섹스를 '하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헤픈 여자는 '걸레'라 비하당하고 어장관리녀는 '쌍년'이라 비하당한다.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평소엔 철벽녀지만 나에게만 주는 여자'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선택하고 그에게 '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마켓에서 하락시킨다. '주었다'는 것은 주기 전보다 좀 덜 남았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소비 당해서 흔적이 남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나는 철벽녀이므로 이전에 안 줬음' 이미지가 유리하다.
왜 여자는 남자의 작업을 눈치채고 같이 즐기고 연애하면 안 되는가? 왜 철벽녀야 하는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같이 연애하고 섹스한다고 해서 '헤픈 여자'가 되어야 하지? 왜 한 남자에게만 '주고' 다른 이에게는 철벽을 쳐야 좋은 여자 소리를 듣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좋게 거절하면 어장관리녀가 되고, 여지를 주지 않으면 까다롭다 소리를 들을까? 왜 여자는 '주는' 존재가 되어서 연애할 때마다 '소비'가 되고, '헌 것'이 되어 '걸레' 소리를 들어야 할까?
여자는 '상품'으로 취급되고, 그러므로 최대한 손이 닿지 않은, 좋은 신상을 나 혼자 가지기를 원하는 판타지에 맞지 않아서이다. 철벽녀는 다른 남자를 다 거부하고 나에게만 열리는 최애 상품이고, 어장관리녀는 너는 아직 나를 가질 자격이 되지 않는다 하는 상품, 헤픈 여자는 아무나 가질 수 있으므로 가져도 별 가치가 없는 상품이다. 그래서 철벽녀는 욕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생각했을 것이다. 가치가 떨어지지 않은, 자신을 쉽게 주지 않는 여자를 말하면서 그 '안 주기'가 어장관리녀처럼 의도적이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철벽녀가 나쁜 건 아니지만, 철벽녀를 찬양하며 헤픈 여자/어장관리녀는 까는 문화는 여혐 사회일거라는 얘기. 우리 상품화 그런 거 없이, 그냥 싱글들끼리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면 안 되나효. 왜 사랑하면 여자에겐 손해라고 주입 교육 시키나효.
덧:
이러면 꼭 한 마디 더하는 사람 있다. '섹스하면 여자가 손해니까 그렇지! 몸 함부로 굴리면 임신도 하게 되고 성병도...' 그래놓고 남자들보고 콘돔 끼라는 말은 절대 안 함. 여자는 하여튼 무조건 철벽 두껍게 치고 나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봉돼야 함 <- 이게 그들의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