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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31. 2018

안아키 이야기

2017년 5월 3일

아마들 많이 보셨을 테지만 약 안 쓰고 아이 키우는 엄마들 모임이라는 카페가 화제가 되었다. 아무런 약을 쓰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게 취지인 듯한데, 영국 의사 발 백신 루머가 미국과 영국을 돌고 돌아 반 지성주의와 결합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운동과 짝짜꿍이 맞더니 그런 식으로 커져가더라. 미국/영국에서는 상당히 큰 문제다. 중산층 가정이 주인 곳에서는 백신 맞은 퍼센티지가 80%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고, 최근에 홍역 등이 몇십 년 만에 다시 돌기도 하고 뭐 등등. 

    

그래 뭐 최근에는 홍준표가 제일 분노 유발인이지만, 나를 분노로 이성을 잃게 하는 그룹 탑텐 상위권에 안티백신 그룹이 늘 있었다.     


둘째는 늘 피부가 안 좋았다. 두 돌 정도 되면서 갑자기 심해졌는데, 아토피...는 아니고, 등과 다리 쪽에 가려운 부스럼이 자꾸 나서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그래서 약 1년간 새벽 한 시에서 네 시 정도에 곧잘 깼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게 1년 가까지 지속되니 사람이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더라. 식단 바꿔보고 병원에서 이런 저런 처방 받아보고 로션 바르고 오트밀 목욕 시켜보고(<- 이건 효과 있더라!) 별 난리를 다 쳤는데, 알고 보니 세탁 세제였다. 세제를 다른 걸로 바꾸고 딱 일주일 만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아 허무해라.     


그 영향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둘째는 발달이 많이 느리다. 말도 늦다. 밤에 잠을 못 자서 그랬는지, 그 세제가 다른 영향을 끼쳐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죄책감은 엄청나다. 왜 세제일 거란 생각 못 했을까. 한참 아플 때는 별 생각을 다 했었다. 내가 그때 너무 일 많이 하느라 무리해서, 좀 일찍 태어나서 (35주에 태어났다) 그런 건가. 역아에 양수도 없어 응급 제왕절개 해서 그런 건가, 내가 모유만 먹였어야 하는 건가, 아님 그냥 우리 집이 원래 피부가 안 좋으니 (나도 아토피가 좀 있었다) 그냥 유전인가. 그러다가 보니 세제. 그걸 1년 가까이 쓰면서 아이에게 악영향 미쳤을 거 생각하니 앞이 아찔. 어떻게 침구를 그렇게 자주 바꾸고 식단 바꾸고 로션 바꾸고 입욕제 바꾸고 하면서 세제는 생각 못 했지.

     

아이가 어디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는 자기 탓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인공적인 거 말고 자연적으로 치유하면 된다에 홀릴 수도 있겠다는 거 알겠다. 너무 험한 사진들만 퍼왔던데, 설마 그 카페에 올라왔던 사진이 다 그런 건 아닐 테지. 뭔가 인공적인 건 안 좋을 거 같고 약 너무 많이 쓴다니까 덜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가입한 엄마들도 많았겠지. 카페 만들고 지 물건 팔아제낀 인간이야 욕먹어 마땅하다만, 이 기사를 보고 룰루랄라 까자까자 하지 못한 이유는 이렇게 또 엄마들이 욕먹는다 싶어서. 

약 먹이면 요즘 참 애 편하게 키운다, 엄마들 너무 생각 없이 조금만 아프면 애들 병원 데리고 가고 약 먹이고 호들갑 떨어서 내성 생긴다 말 나오기 마련이다. 아이 피부가 안 좋다면 아 그거 식단 고쳐보라고 아주 가볍게 말할 사람 천지다. 아 ㅅㅂ 욕 나온다. 일주일이면 21끼를 먹는다. 당신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밥 차려봤나. 그것도 차려준 음식 안 먹고 집어던지는 사람 대상으로. 그거 일주일에 21번 한다. 안 하더라도 누가 챙겨주는지, 뭘 챙겨주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수많은 음식 중에 뭐가 문제인지 하나하나 없애보고 그 와중에서도 계속 피부 문제로 잠 못 자고 북북 긁어대고 그게 쉬운 줄 아나.     


반지성주의가 유행이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면 무조건 인공적이고 화학물질이고 안 좋다고 떠드는 선동가들 많다. 물도 dihydrogen oxide 라고 하면 반대할 사람들이 태반이다. 음식 사서 먹이지 말고 집에서 유기농 재료로 하나하나 해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넘쳐난다. 그런데 초보 엄마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이는 아프고 할 때 무조건 자연주의로, 인공적인 거 안 쓰고 가고 싶다는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다가 안아키 같은 사태도 나고 하는데, 어쨌든 여기에서도 욕먹는 사람들은 엄마다. 욕먹어야 할 엄마들이 없는 건 아닌데, 어쨌든 참 엄마 해 먹기 힘들다.     


* 하지만 안티 백신. 가짜 뉴스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헛소리하는 논문 하나로 지금까지 낭비한 돈이 얼마인지 가늠도 안 됨. 수백만을 죽이던 질병을 겨우 백신으로 잡아놨더니 이 사람들 왜 이럼? 아이 낳기 전에 백신 무조건 맞히겠다는 서약서라도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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