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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2. 2018

스탈린그라드. 전쟁이란.

2017년 5월 30일

역사덕이긴 한데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무기나 병력이나 군사나 뭐 그런 것 보다는 군수 조달, 지도자들의 성장 과정과 성격, 베르사유 조약 같은 전쟁 후의 협약에 좀 더 관심이 있는 편인데 처음으로 전쟁사도 읽을 만하다 느낀 것이 스탈린그라드 책이었다. 20대 초중반에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이 사람이 쓴 다른 책 베를린도 읽었다. 남아공 떠나면서 웬만한 책은 다 버렸지만 차마 못 버리고 챙겨온 책 박스 두 개 중에 스탈린그라드와 베를린도 들어있었다.    

 

오랜만에 역사책 하나 읽자 싶어서 뒤지다가 예전에 읽었던 책 다시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이번에는 킨들 버전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 정말 힘들다. 처음 읽었을 때도 좀 읽기 힘든 부분 많았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했다는 기억이 더 큰데, 이번에는 심리적으로 무척이나 힘들다. 사람이 정말 많이 죽는다. 초반부터 군인/민간인 가리지 않고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다. 열일곱 열여덟, 치기는 넘치지만 아직 세상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열흘 훈련시키고 전장에 내보내 며칠 만에 죽이는 전쟁 기계. 정말 사람을 그저 병정놀이할 때의 장난감 정도로 취급한다.     

메타 레벨로 올라가면 사람은 훨씬 더 잔인해질 수 있고, 더 큰 폭력에도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게 참 그렇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로 전진하던 중 얘기다. 남자들은 많이들 징병되어 갔고 거의 여자와 노약자가 대부분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몰려오는 독일 탱크에다 대고 대전차포를 쏜 이들은 10대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독일 병사들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상대로 총을 쏜다는 데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다던데, 사실 그 전날 독일군의 전투기들이 융단폭격을 해서 단 하루 만에 4만 명의 사망자가 났다. 말했듯이 젊은 남자들은 많이 징병 되어 갔으니 그 4만 명 중에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비율은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융단폭격을 멀리서 보는 것과, 10대 소녀를 직접 보고 쏘는 것은 또 달랐겠지. 군 지도자들 역시, 바로 앞에서 한 명의 총살당하는 걸 보는 것과, 지도에서 이리저리 핀 옮기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졸업 과목 중에 제일 좋아했던 게 역사였고, 특히 유럽/미국 근대사는 엄청 관심 있게 봐서 1700년대부터 시작하여 산업혁명, 대영제국 시절, 프러시아 제국에서 비스마르크를 거치는 독일의 성장, 식민지 전쟁, 미국의 격변, 제1, 2차 세계대전까지 참 징그럽게도 많이 읽었는데 나이 들고 아이 낳고 키우면서 다시 보자니 몇 배로 더 심란하다. 징병된 남자들, 지원해 간 아이들은 내 아들보다 열 살 정도 더 먹은, 정말 '아이들'이 많았고, 독일군이 떠나고 난 후 그렇게도 비난받고 동네에서도 돌 맞으며 쫓겨났던 여자 '협조자들'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은 여자들도 많았다. 수만 수십만 명의 군대가 움직이면 정말 중요한 게 군수 조달인데, 상당히 많은 경우 live off the land (현지 조달?) 이라고 한다. 말이 그렇지 저건 지나가면서 아무나 약탈하겠다는 말. 딱 하나 좋은 거라면 1차 세계대전 후에는 코르셋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     


이 책 읽는다고 하니까 독일 동료, 루마니아 동료, 러시아 동료가 다 공통으로 묻는다. "누구 입장에서 쓴 거야?" 글쎄 이건 독일 히틀러와 러시아 스탈린 돌려까기인 거 같은데. 둘 다 멍청했고, 극도로 나쁜 판단을 줄줄 내리는 바람에 아랫사람들이 수백 수천만 죽어나갔다. 히틀러야 뭐 미쳤던 거 다 알지만, 스탈린이 아무 생각 없이 일반 병사 수천 수만을 눈 깜짝 하지 않고 희생시키는 데에 독일군들은 끝까지 적응 못했다고.     


어쨌든. 전쟁사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 한국에서도 번역본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왜 2차 세계대전 끝나고 UN이 생기고 EU가 생기고 NATO가 생기고 최대한 다른 세계 전쟁 막으려고 했는지 대박 이해가게 해주는 책.     


(안토니 비버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으로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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