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13. 2018

내 안의 슈퍼맨은 없어

2017년 6월 26일

식당에서 일하는 10대 혹은 20대 초반 종업원들과 30대 종업원들은 확실히 다르다. 고등학교/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여 용돈 버는 아이들과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난 커서 당연히 이런 거 안 할 거지만 지금은 공부 중이니까 아르바이트로 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다. 이건 내가 겪어 봐서 안다. 서른 살 고시 수험생이 서른 살 회사원보다 훨씬 더 당당할 수도 있는 이유는 ‘회사원 너는 그게 지금 네 인생이지만, 나(수험생)는 좀 더 화려한 미래를 앞두고 있는, 그러니까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주석 없는 실패 없다. 난 고3 때 하버드 지원했다가 똑 떨어졌다. 매년 만 명이 넘게 지원해서 천 명 정도 붙는다면 9천 명은 떨어지는 거다. 그 떨어진 사람들도 다들 할 말이 있을 테고, 나도 할 말 있다. 별 볼 일 없어 보였던 사람이 하버드대 학생이라면 갑자기 대단해 보일 수 있는, 허름한 셔츠를 뜯어내면 슈퍼맨 로고가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걸 놓친 사람들은, 셔츠를 찢어 내고 짜잔 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라도 나도 그럴 수 있었음을 강조하려 든다.     

이게 한심하다는 걸 아는 건 내가 너무나 오랫동안 그런 콤플렉스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난 똑똑한데, 나도 하버드대 갈 수 있었는데, SAT 점수는 잘 받았는데,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집안에서 밀어주지 않아서, 좋은 사립에서 그럴듯한 과외 활동을 못 해서 기타 등등. 스무 살에 초봉 50만 원 받아 가며 아침저녁 두 시간 출퇴근했지만 당당했던 건, 난 하버드 갈 만한 인재였는데 비극적으로 못 간 거고, 지금 일하는 거는 어디까지나 임시직인 거라 생각해서 가능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은 별 볼 일 없는 고졸 박봉 평사원이었더라도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아니까, 내 안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어떤 존재인지 아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못 알아본다는 것이 신경질 났고 조급했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였다. 난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였다. 소설 몇 개 출판했답시고 집에 들어앉아서 학사 공부 끝내고 새 입시 공부도 도전하던 상태에서 어느 날 깨달았다.     

슈퍼맨은 없어. 스파이더맨도 없어. 난 그저 나일 뿐이야. 스물일곱, 고졸에 무직인 유부녀. 물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소설로 대박을 칠 수 있는 거고, 최소한 대학은 졸업할 수 있겠지. 어쩌면 지금 이 나이에 진짜 새로 대입에 성공해서 지난 8년은 없었던 것처럼 대학 1학년부터 시작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고, 지금 내 모습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단지 그거다. 스물일곱, 고졸에 무직인 유부녀. 내 안의 슈퍼맨을 봐달라고 하기 전에 주위를 돌아봐. 나도 이랬다는, 나도 이럴 수 있었다는 그런 가능성 한두 가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는지. 다들 현재 자신의 모습에 주석을 달아.‘그래 난 고졸이지만 하버드에 갈 뻔했던 사람이야’처럼. 네가 들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냐.

     

그 다음 달에 취직했다.  '난 IT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란 핑계로 그냥저냥 목적이나 방향 없이 떠돌던 경력을 정리하고, 정말 처음으로, 내가 꿈꾸던 대단한 커리어는 아니지만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객관적으로 쳐 줄 수 있는 것이 IT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QA 쪽으로 빠졌다. 아프리카 삼류 대학이라고 깔보고 하나마나라 생각하던 학사도 마쳤다.     

QA는 테스팅을 포함하므로 개발자들이 깔보는 분야다. ‘넌 근데 왜 개발 일 안 해? 개발 일 할 정도 머리는 되는 것 같은데.’란 얘기 엄청 자주 들었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응. 나 하버드 갈 정도의 성적이랑 SAT 점수도 나왔어. 아이큐로만 보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고도 해. 하지만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고, 가능성에 매달리다가 인생 말아먹는 건 27년으로 족하다고 봤어. 내 가능성을 보고 알아달라고, 나 보이는 것보다는 훨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달라는 투정도 이젠 그냥 그만두기로 했어.’     


이제는 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것에 매달리면서 현실을 미래로 밀어 버리는 쪽을 택하려 했다는 것. 식당에서 그냥 웨이터로 일하는 것보다는 뭔가 대단한 시험공부를 하면서 ‘식당일은 그저 임시로 할 뿐이야.’하는 쪽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 하버드 입시 준비를 하는 동안은 하버드에 갈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냥 저임금 평사원으로 취업해 버리면 내 가능성은, 내 꿈은, 내 인생은 거기에서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그걸 놓기가 힘들었다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싸늘해지면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관대해졌다. 상세한 주석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자신의 인생, 자신의 실패에는 관대하지만 헤드라인만 보이는 다른 이들에게는 매정할 수밖에 없다.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은(아이를 낳으면서는 단독 아파트로 옮겼다 :)) 그 나이가 되도록 맞벌이하면서도 어린애들이랑 하우스셰어하는 우리 부부가 찌질하다고 생각하고, 특히나 신랑은 집에서 재택 근무한답시고 어슬렁거리니 루저 중에서도 그런 루저가 없다고 본다. 이해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셔츠를 찢고 사실 나는 슈퍼맨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나쁘다거나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서로의 이너 슈퍼맨을 알아주기엔 스피디한 현대사회는 까칠한 것 아닌가.     


한때는 대단했던 꿈도, 이상도, 가능성도 이제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끝났다. 어렸을 땐 다 천재지만 크면서 평범해진다는 법칙에 딱 맞아 들어간다. 좀 더 노력하면 관리직, 혹은 좀 더 돈 버는 계약직 정도로 들어가서 지금 버는 것보다 두어 배 더 벌겠지. 그게 다다. 더 이상 슈퍼맨, 원더우먼은 없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찌질한 피터 파커에게서 스파이더맨을 뺏어가도 그 나름대로 인생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거니까.     




잠수 중인 양파. 스물일곱엔 어땠었냐요란 질문 받아서, 관련 글 올립니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지났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 자신을 좋아하지 못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