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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3. 2018

나 자신을 좋아하지 못했던 이유

2017년 6월 20일

록산 게이의 Hunger를 읽었다. 열두 살에 끔찍한 일을 겪고 그때부터 몸집을 키워서 숨어야겠다 결심하고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은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렇지만 얼마나 자기 자신을 싫어했는지, 학대했는지, 가치 없는 인간이라 자신을 멸시했는지, 음식에 집착하면서 집착하는 자신을 싫어했는지는 완벽하게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삼십 대 후반에 와서야 나 자신을 아주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록산 게이의 섭식 습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이, 내 주위 사람들도 내가 왜 그리도 내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고 학대하는지 이해 못 하더라. 왜 그렇게 글을 써대면서도 글 쓰는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주의력 결핍증 뼛속까지 문과생 인간이 IT에서 20년 가까이 버텼는지, 왜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는지.     

난 강의는 십분도 채 못 듣는다. 늘 정신이 어디에 팔려있다. 내 머릿속 안에서 산다는 말이 정확하다. 멍하게 허공을 보다가 차도에 걸어 들어가는 게 일상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내 나쁜 기억력으로 다 잃어버릴까 얼른 적어둔다.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언제나 딴 짓을 하고 있다. 자기 통제력 같은 거는 약에 쓰려도 없다. 아직까지 독하게 단식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 같은 거 성공해 본 적이 없고, 찬찬히 꼼꼼하게 진득하게 매달리는 걸 못한다. 그런 내가 미치도록 한심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원한다.     

돌아보면 난 내가 통제력이 없는 무능, 쓸모없는 인간이라 결론 내리게 된 것이 

1) 정규 교육 방식에 적응 못하고 

2) 5~10킬로만 빼면 되는 거 그걸 못 빼서 늘 안달이었다, 

이 두 가지인데, 나에게 맞는 교육 방식이었고 사회의 미의 기준이 달랐다면 자존감 넘치는 알파걸이 되었을지도?     


뭐 어쨌든.     


그나마 지난 1~2년은 안 그래도 정신없는 머릿속에 쓸데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넣느라 아무것도 안 들어간다. 나 같은 주의력 결핍증 환자에게 인터넷은 마약이다. 엄청난 뉴스피드 리젠은 크랙 코카인이다. 10초짜리 헤드라인, 30초짜리 뉴스, 1분짜리 포스팅, 다시 5초짜리 업데. 그러면서 내 나쁜 기억력은 내 자아까지 잊어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어서 인터넷을 확 줄이고 책을 더 읽으려 노력중이다. 페북부터 정리해야 함. 에효.     

...쓰고 나니 내 얘기만 썼네. 록산 게이 글을 보면 역시 글쟁이들은 다들 좀 비슷한가 싶다가, 나와 다른 부분도 있긴 많다 싶다가, 그래도 참 술술 잘 읽히게 쓴다로 결론 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지만 저자가 저자다 보니 하루 만에 끝냈다. 초고도 비만인 사람을 현대 사회는 어떻게 취급하는지의 서술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처참하다.     

- 아 이거 이번 달에 나온 신간이구나! 이렇게 따끈한 책 읽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음.


https://www.amazon.com/Hunger-Memoir-Body-Roxane-Gay/dp/0062362593/ref=sr_1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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