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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9. 2018

가난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2017년 8월 3일

Summermelt     


여름 방학 동안 녹아 없어진다는 뜻이라는데, 대학교에서 입학 허가 받은 아이들이 입학식 당일에 나타나지 않는 비율이 심하게는 30%까지 된단다. 대학 막상 가려니까 무섭고 깜냥이 안 된다 싶었나보다, 자신감이 없었나보다 했다는데 알고 보니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은 자잘한 이유로도 대학을 포기함을 발견했다고.     


대학 학비가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보통은 대출과 정부 지원을 받기 마련인데 그 절차와 서류 준비는 아주 복잡하다. 이혼가정에서 컸거나 조부모와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사인'을 요구하는 서류 하나만도 엄청 큰 고민일 수 있다. 이것저것 자잘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많은데 이들에겐 어쩌면 주위에 물어볼 만한 어른 한 명 없을 수도 있다 (보통 여름 방학 기간이라 교사들도 다 놀고, 이들은 이미 졸업한 상태다. 아직 입학은 안했으니 대학교에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다). 이런저런 서류 떼어 가야 하는 것도 많은데, 아직 어린 십대 아이들에게는 벅찬 일이기도 하다. 정말 똘망똘망한 아이들이라 해도, 입학 서류 일로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어쩌다가 차가 고장 났다면? 그 날 알바를 빼먹을 수 없었다면? 갑자기 조부모님이 아프신데 돌볼 사람이 없었다면?     

가난하다는 건 꼭 먹을 게 없다거나 추위를 참아야 하는 그런 종류라기보다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더 도와줄 어른이 없고, 기댈 곳이 없고, 차 빌려줄 사람이 없고, 돈 빌려줄 사람이 없고, 부담해야 하는 책임은 좀 더 많은 형태이기도 하다. 그렇게 절차 하나 빵구 나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Tunnel vision     


한 여자는 실직하고 나서 남편에게 '무슨 살림을 이따위로 하냐 화장지도 다 떨어졌다'는 욕을 듣고 싸우다가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너무 힘들게 생활하던 중 신용카드 신청한 게 나왔는데, 생필품에 너무 쪼들리던 그녀는 당장 카드를 가지고 슈퍼마켓에 달려가 몇 달 치 휴지, 세탁세제, 아이들 간식 등등을 사 오면서 카드 한도를 며칠 만에 넘겼다. 그 다음 주 출근할 때 쓸 기름값도 생각을 못 했다.     


1차 세계대전 시 양심 병역 거부한 이들을 상대로 기아 상태까지 몰아넣는 생체실험을 했었다는데, 이들은 그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음식에 대한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아예 식탐을 주체 못하는 이도 있었고, 식당을 차리거나 요리사가 된 사람도 있었단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딱 그거 하나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가난한 이들이 돈을 흥청망청 쓴다고 욕하기 쉬운데, 그 한계의 상황에서 하루하루 해결하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약간의 돈이 생겼을 때, 혹은 여유가 생겼을 때, 그것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고 이것을 터널 비전이라고 한단다. 그렇게 돈을 계획 없이 써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에 찌들다 보면 돈이 생겨도 계획 있는 지출을 하기가 힘들다가 진실에 가깝다는 말.     


SLS     


영국의 가정의가 쓴 에세이 중에서 '이유 없이 온몸이 아픈 증상, 정밀 검사를 해도 다 정상이지만 실제로 심한 고통에 시달려서 진통제도 잘 안 듣는 상황'을 SLS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Shit Life Syndrom. 사는 게 지랄 같으니 몸이 아프다는 얘기. 보통은 싱글맘이고, 보통은 아이들 때문에 미친 듯이 힘들고, 본인도 실직했거나 앞으로 돈 생길 일도 없거나, 알코올 혹은 마약 중독에 가정폭력을 겪었거나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희망도 없고 매일매일이 고달프고 힘든 이들은 아프다. 의사들은 아무런 이상 없다며 진상 취급하지만 이들은 정말 아프다. 진통제를 쓸어 넣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로서 진통제 처방 외에 달리 도울 방법을 그는 알지 못한다.     




가난은 타인이 보기엔 참 단순한 문제로도 미래 계획을 포기하게 만들고, 시야를 좁히며,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고, 그렇게 꼬이고 꼬이다 보면 그냥 마구 아프기도 한다. 그래도 이것을 올곧은 일관성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유는? 못난 그들과는 나는 달라서, 더 노력해서 이렇게 잘사는 것임으로 거리낌 없이 잘난 척해도 되고, 분명히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고생하는 이들이니까 무시해도 된다는, 안 도와줘도 된다는 태도를 합리화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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