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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4. 2018

마음 한구석은 죽을 때까지 forever England

2017년 9월 24일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일주일이 다 되어가던 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나 관광객 모드를 벗어나고 있구나. 나에게는 개인적이고 친밀한 언어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당황스러움, 정신없이 현란한 간판들, 혼자 편의점에 앉아 라면, 김밥을 먹는 시간들이 점점 익숙해지는구나.     


초딩 입맛이라서 좋아하는 음식이 편의점 음식, 떡볶이 돈까스 이런 건데, 강남의 그 많은 음식점을 지나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직장인들, 데이트하는 연인들, 학생들, 친구들. 그들은 다 한국말을 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역시 나를 한국인의 한 명으로 본다. 머리 산발하고 추리닝 차림으로 밤늦게 강남 거리를 혼자 다니는 이상한 여자로 ㅋㅋㅋ     

이것저것 보다 결국 길거리 떡볶이를 먹었다. 사천오백 원이요 해서 돈을 주면 잔돈을 준다. 몇 마디 하지 않아도 그들은 금방 눈치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다다다 물어보면 조금 말을 더듬어서 그럴 수도 있고, 말하다가 '음..' 하는 게 교포스럽다고도 한다. 뭐 어쨌든.     


한국말을 할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된다. 좀 덜 비꼬고, 좀 더 친절하다. 좀 더 말실수할까 걱정하고, 농담 역시 좀 더 안전해진다. 사실 삼십 년간 한국 떠나있으면서 한국에서 한두 주 이상 있어 본 적이 없어 한국어 할 때는, 특히 처음은, 회화 시험 보는 느낌 들 때도 있다. 나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쾌활하고 친절하다고 (...) 한다. 아마도?     


영국에 돌아왔다. My beloved England. This big little island. 기회만 되면 영국 까는 게 버릇이 되었지만 착륙하면서 든 느낌은 확실히 애증. 그래. 여기서 평생 살 거라 믿은 적도 있었는데. 아프리카 떠나서 첫 몇 달, 런던의 그 많은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행복해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지.     

고등학교 때 배운 The Soldier의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 사실 나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There is some corner of my heart that will be forever England. 내 마음도, 내 기억도, 어느 한구석은 죽을 때까지 forever England일 거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크게 실망하지도, 널 떠나겠다고 난리 치지도 않을 테니까.     


시차로 새벽에 잠을 깼다. 그리니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Gently rolling, green hills of England. 정말 좋아했던 영국. 떠날 준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참 조용한 아침에 아름다운 그리니치 공원.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깨어서 엄마 왔다고 좋아한다. 남편은 '이건 꼭 봐야 돼' 하며 골판지로 인형 뽑기 기계를 만드는 -_- 유튜브 비디오를 보여준다. 역시 공돌공돌이는 공돌공돌.     

- 근데 진짜 보세요. 골판지로 집에서 만드는 뽑기인 형! 완전 신기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16MVPbX2D1M     


- 사진은 오늘 아침에 찍은 그리니치 공원     

- 마지막 사진은 떠나기 전날 밤 열두 시에 혼자 먹고 온 치킨!! 아 정말 치킨 그리울 거예요 ㅠ.ㅠ     

- 영국 국뽕 넘치는 시. 그래도 좋아합니다. The Soldier     


The Soldier


If I should die, think only this of me:

That there's some corner of a foreign field

That is for ever England. There shall be

In that rich earth a richer dust concealed;

A dust whom England bore, shaped, made aware,

Gave, once, her flowers to love, her ways to roam,

A body of England's, breathing English air,

Washed by the rivers, blest by suns of home.     


And think, this heart, all evil shed away,

A pulse in the eternal mind, no less

Gives somewhere back the thoughts by England given;

Her sights and sounds; dreams happy as her day;

And laughter, learnt of friends; and gentleness,

In hearts at peace, under an English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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