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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5. 2018

내 아들 연애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2017년 9월 27일

아들은 참 나와 다르다. 얘를 낳고 나서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감, 혹은 이해는 정말 타고나는 게 대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     


오페어 한 분이 이번 주에 떠나시게 되어 어제 카드를 사서 가족 모두가 다들 작별인사를 적어 드리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난 사회적 교류 방식을 하나하나 배워서 아는 사람이라, 그런 식의 카드 역시 내 주위에서 하는 걸 봐서 '아 환송회 할 때는 이런 거 하는 거구나' 배웠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누가 나에게 그런 카드를 줄 거라는 기대는 1도 없다. 어쨌든. 난 그런 카드에 보통 "그동안 여러 가지로 감사했고 앞으로도 행운을 빈다"는 식의 인사를 자주 쓴다. 그런데 일곱 살 아들은 - I hope you enjoyed your time with us. 우리 가족과 좋은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얘 뭐지. 쿨럭. 


아주 근본적인 차이가 여기서 나타나는데 나는 상대방의 감정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너무나 굳게 믿어서, 바꾸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고 그들의 감정이 어떤지 딱히 묻지도 않는다. 우리 가족과 같이 있었던 시간을 좋아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느낌이고, 내가 어찌 바란다고 해서 바꿀 수 없지 않소. 좋았다면 좋은 거고 안 좋았다면 안 좋은 거지. 뭔가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말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문제가 있다면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관계를 만들어둘 수 있는 것뿐. 

그래서 묻지도 않는다. 묻는다는 거 자체가 하이젠버그의 불확실성 법칙에 해당되어서, (답하는 사람이 정말 솔직하게 말 할리도 없거니와) 상대방의 반응을 내가 억지로 요구함으로 관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달까. 같은 논리로 독자분들과 오프를 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즐거웠음'을 말하지, '좋은 시간이셨기를 바랍니다'라는 식의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나야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게 즐거웠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뭔가 대답을 강요하는 건 싫다. 만약 그런 식의 말을 했다면 그건 그냥 하도 주위에서 자주 봐서 배운, 반사 신경에 가깝다.     


아들은 선물 사준 사람이 집에 놀러 오니까 그 사람이 몇 달 전에 사준 선물을 들고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더라. 니가 엄마보다 낫다 (...) 난 선물 같은 거 최대한 안 주고 안 받기를 선호하다 보니까, 차라리 내가 주고 말지 받는 건 많이 부담스러웠다 (나이 들면서 나름대로 고쳤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준 선물을 내가 감사히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사람이 좋아하겠지 정도로까지 사고가 미치지는 않았다. 내가 그런 걸 전혀 안 바라니까. 같은 논리로 아들은 멋있는 신발을 신으면 학교 친구들이 더 좋아해줄 거라 생각하더라.     

레알?? 진짜?? 좋은 거 입으면 주위 친구들이 오 너 쿨하다! 그래?? <- 4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일케 생각 안 해봤음. 스쳐 가는 사람도 아니고, 나랑 친한 사람들에게 내가 입은 옷이 관계에 영향을 미쳐??     


난 내가 느낀 것만 말하고, 상대방의 반응은 일부러 알려 하진 않는다. 내가 참견할 영역이 아니라 생각해서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겠지. 여러 가지로 감사했고 앞으로도 행운을 빕니다...는, 우리와 좋은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와 근본적으로 틀리다는 건 알겠다. 일곱 살의 아들과 나는 벌써 그렇게 감성적으로 다르다. 아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난 정말 레알 진실로 이런 기대 없다), 상대방의 반응에 신경을 쓰고 (난 신경 좀 써야 함;), 그 사람이 해준 것을 잊지 않고 보답하고 (받는 거 부담스러워함;;), 그렇게 해주면 그걸 관심과 사랑으로 보더라 (...이하 생략).

     

섬세 예민 판다군. 연애는 걱정 안 해줘도 잘 하겠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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