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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6. 2018

너무나 영국인다운, 영국스러운-Hot Fuzz 감상기

2017년 10월 25일

최근에 Hot Fuzz를 다시 봤다. 남아공에서 봤던 게 십년도 넘었는데 그땐 참 랜덤하고 재미있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었다. 영국에 와서 다시 보니까 새삼스럽게 와 닿고 재평가하게 된 콘텐츠가 해리 포터였는데 핫 퍼즈 역시 다시 보니까 이거 랜덤한 코미디가 아니라 엄청 날카로운 풍자였군.     


주인공은 좀 독일스러운 FM 경찰관이다. 유도리 제로에 열정이 넘치는 스타일. 영국인들이 싫어하는 "어깨 힘주고 나대는 스타일"이다. 영국 사람들 국가 스포츠가 투덜거리기라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 리스트도 아주 많다. 잘난 척하는 사람, 일은 혼자서 열심히 하는 척하는 사람 (실제로 혼자 하더라도 ㅋㅋ), 실제로 잘난 사람, 잘났는데 잘난 거 아는 사람, 꼭 자기 혼자만 진정성 넘치는 것처럼 오바 떠는 사람 뭐 등등. 그러므로 그 주인공은 오프닝부터 핍박이다. 넌 너무 잘났어. 넌 너무 나대. 너 혼자 잘난 척 다른 사람은 뭐가 되냐? 그런 이유로 강제 전근 당하는데 이 사람이 도착한 곳은 영국 최고의 마을이라는 샌포드.     


아. 영국오기 전엔 몰랐다. 영국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양복입고 서재에 앉아 포쉬하게 얘기하는 줄 알았지. 사실은 속 좁고 외부인들 극하게 싫어하고 겉으로 뭔 말할지 몰라도 뒤로서는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누가 참견하는 거에 발광하고 등등. 브렉시트가 우연이 아니었음. 마을 사람들이 그 속 좁음과 배타심의 표현이라면 경찰관 동료 대니는 순진함이다. 미국 경찰 영화 보면서 우와 하는 거. 배우들이나 작가들도 '미국'에서 성공해야 우와 해주는 거랑 비슷하다. 미국에 대한 은근한 애증이랄까. 그리고 최소한 겉으로는 다들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딴 사람이 내 일에 간섭하는 게 죽기보다 싫으니까 나도 간섭 안 한다. 무지막지하게 궁금하고 오지랖 부리고 싶어도 안 그런 척한다. 그리고 늘 투덜거리고 게으른 거 같아도, 한 번 시동 걸리면 다 자기 할 일 찾아서 잘 한다. 폐 끼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니까 다들 투덜거림 멈추고 또 열심히 시키는 대로 잘 따르더라.     


얼마 전에 남아공에서 봤던 남아공 영화 District 9 을 보고, 드디어 그 때 왜 해외 관객들이 그 영화를 좋아했는지 이해했었다. 남아공 살 때는 그 영화가 잘 담아낸 남아공스러움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별거 없는 풍자 같았고 스토리도 뻔했고 그랬는데, 영국에서 10년 지나고 보니 남아공 아프리칸스 백인들의 말투, 태도, 사회 분위기를 잘 잡아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더라.     

반대로 핫 퍼즈는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냥 웃기고 재밌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보니 아, 정말 영국스럽군. 다운튼 애비나 역사 드라마보다 이게 진짜 영국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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