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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6. 2018

누가 더 성실하고, 더 선하고, 더 능력있는가

2017년 10월 25일

난 열 시 반까지 출근하면 된다. 그리고 재택근무가 쉽다. 동료들도 한 달에 최소 한두 번은 재택을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택배 받을 게 있어서. TV 수리공이 와서. 파이프 고쳐야 해서. 부모님이 놀러 와서. 애들 아파서. 이건 집에서도 일이 가능하니까 그런 핑계가 통하는 건데, 무조건 현장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면 결근으로 쳐야 하는 사유들이다. 의사, 선생님, 서비스 직업 등등이라면 우선 재택 자체가 불가능하고, 몸이 좀 안 좋아도 어쨌든 빠지게 되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근태'가 아주 엄격한 곳이 많다고 들었다. 나보고 8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물론 가능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좀 무리가 가는 날이 있겠지. 오늘은 둘째가 새벽 네 시에 깨는 바람에 달래고 재우느라고 난 늦잠 잤다. 여덟시에 일어났다. 엄격한 직장 다녔다면 난 얄짤없이 지각이다. 몸이 좀 안 좋은 날, 그냥 재택한다고 하면 별문제 없이 넘어가지만, 재택 불가능한 직장이었으면 몸 관리 애 관리 잘 못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친다고 욕먹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는 사람과, 근무환경 괜찮은 직장에 다니면서 더 받는 사람을 비교할 때, 세상은 두 번째 사람이 더 성실하고 더 선하고 더 능력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랬어서 더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됐을 수도 있지만, 다행이 좋은 부모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 온갖 지원받고 서울 부모님 본가에서 가까운 대학 다니면서 스트레스 덜 받고 건강검진 제때 받고 힘든 알바 안 하고 스펙 쌓아서 좋은 직장 들어간 사람 1번, 어렸을 때부터 가족 사정이 좋지 않아 많은 지원은 못 받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몇 시간씩 통학하면서 알바도 해야 하고 학점도 올려야 하며 어학연수 등등은 못가고 스펙은 조금 떨어져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무리한 야근을 매일 하는 이 2번 두 사람을 비교할 때, 과연 1번이 더 성실하고 더 선하고 더 능력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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