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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6. 2018

개에게 입마개를 해야 하는가

2017년 10월 26일

최근에 개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뉴스가 되면서 모든 개에게 입마개를 해야 하는가 논란이 있더라. 그냥 순전히 확률로 보면 개에게 물려 녹농균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죽은 케이스는 (아주 적다고 기사에서 봤다가 오보라고 하여 업데). 위험으로 보면 차도 다 없애고 집 밖에 안 나가는 것이 더 안전하겠으나 집안에서 다치고 죽는 사람도 엄청 많다. 돌부리에 발 걸려 넘어져서 뇌출혈로 사망하는 케이스, 샤워하다가 비누 밟고 미끄러져 죽는 케이스가 훨 많을걸. 아이들도 개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죽는 것보다 카시트 안 해서 교통사고로 죽는 아이들이 훨 많을 테고.     


그렇지만 나 포함해서 사람들의 느낌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무서운 개를 보고 흠칫한 적이 있고, 물리면 어쩌나 무서워한 적이 있다. 내가 견주가 아니기 때문에 밖에 나갔을 때 좀 무서워 보이는 개라면 입마개를 했으면 좋겠다 느낄 수 있겠다. 이런 사건이 뉴스에 뜨면 다들 실제 확률은 무시하고 (비이성적으로라도) 훨씬 더 조심을 하게 된다. 비행기 사고 엄청 드물지만 한번 사고 나서 언론에서 난리 나면 보험 드는 사람이 늘어나고, 미국에서 이슬람 테러로 죽을 확률은 총 맞아 죽을 확률보다 훨 낮지만 그래도 이슬람인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듯이.     

이 두려움과 비난, 오버 보호조치는 사회 정서 몇 가지에 기반을 둔다. 하나는 내가 잠정 피해자인가. 둘은 사회 여론이 비난해도 되는 상황인가이다. 예를 들어 삼일에 한 번씩 남친/남편에 의해 살해 당하는 여자가 나온다 하는데 잠정 피해자들인 여자는 이에 상당히 예민해도 남자들은 훨씬 덜하다. 일 년에 백 명 이상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으로 사람이 죽는다 해도 그를 방지하는 것보다는 이번 패혈증 사망이 더 급하다. 

이에 사회 여론이 더해지는데, 그런 일이 영국에서 있었다 해도 "모든 개에게 입마개 씌우자"는 주장이 사회적 동의를 얻을 일은 없다. 딱히 영국이 더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애견인은 더 많으며, 애완동물에게 더 유한 분위기라서 그렇다. "나는 욕해도 내 개 욕은 하지마"란 사람들도 있다니까;; 그리고 여기는 아동학대 반대 단체가 조직되기 50년 전에 동물 학대 방지 조직이 생긴 곳이라고들 농담하는데 농담이 아니라는 게 호러(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RSPCA), 1824년 vs 어린이 학대 반대 조직(Londo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 1884년. 그리고 첫 번째는 '왕립'임!) 진짜 어쩔 땐 아이들보다 개들에게 더 정성 들이는 거 같기도 쿨럭; 사람보다 개가 우선이냐!! 물으면 "웬만한 개가 더 낫다!!" 할 사람도 많고.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에 대한 분위기가 훨씬 더 차갑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냥 문화가 다른 거니까), "민폐"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있으면 '견주'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아가기 아주 쉽다. "왜 일반화 하나요"란 얘기는 안 들리는 게, 그 많은 성희롱 성추행 범죄 있어도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닌데 왜 일반화 하나요?" 하다가, 개에 물린 케이스 딱 하나 나오면 견주들 욕이 바가지로 나온다.     

여기서 이런 말 다 해놓고서도 내 반응은 여전히 비이성적이다. 확률적으로 개에게 물려 죽을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건 안다. 오히려 매일 가는 출퇴근길에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을 확률이 더 높겠지. 하지만 공원에 산책 가서 덩치 큰 개가 눈에 띄면 피하게 된다. 목줄 없으면 주인이 밉다.     

모든 개에게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는 주장은 남자가 있는 모든 직종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해야 한다와 비슷하게 들리는데, 사실 둘 다 환영할 사람들도 있을 걸 (...). 잠정 피해자 쪽에 더 가깝냐 잠정 가해자 쪽에 가깝냐에 따라서.     


결론: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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