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3일
사람의 말에는 컨텍스트가 있고 맥락이 있다. "아내가 아침 차려줬으면 좋겠다"가 그렇고, "가족 같은 회사"가 그렇다. 소규모 회사에서 "오너 마인드 가진 직원"을 찾는다면 어떤 생각나는가. 좋게 봐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현실은 월급 체불해도 군소리하지 않고, 예고 없이 야근시키고, 그래놓고 수당은 확실히 돈으로 쳐주지 않고 짜장면 배달시켜주는 걸로 퉁치는 곳이 연상될 수 있다. 많이 당해본 사람은. 그러니까 "가족" 혹은 "오너 마인드"는 "노동법 따르지 않겠다" "내 맘대로 부려먹겠다" 정도로 이해한다.
이런 사장은 어떤가. "나는 직원 구할 때 SNS 안 하고 친구 없고 해외여행 안 나가본, 지방에서 혼자 올라온 애들이 좋더라. 수더분하잖아." 이 사람 머리에서는 "해외여행 안 해봤음"은 집안이 넉넉하지 않고, 지방에서 혼자 올라왔으면 기댈 대 없고 자취하고 있을 거면 직장 더 필요하고, SNS 안 하면 마구 착취해도 어디 안 올릴 거 같다 대강 이렇게 머리 굴렸을 것 같다. 좋게 안 들린다. 만만하게 시켜먹을 사람 찾는다는 거잖아. 비행기 공포증 있어서 해외여행은 안 가봤으나 지방 유지의 3대 독자로 엄청난 지원 받으면서 서울에서 자가 집에 혼자 자취하고 있는 학생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런 맥락을 애써 무시하고 그냥 피상적으로만 보면 "별말 아닌데 뭘 그리 예민하게 구냐 좋게 들어 좋게"라고 할 수 있는데, 평생직장이라고 하면 사장이 하는 말을 새겨듣지 않겠는가. "그 남자 술 마시면 좀 그래"라는 한 마디에 뭐가 담겨있는지 모르는 여자와 아는 여자는 인생 험난도가 급격하게 달라지는데, 주위에서 조언해주지 않았겠는가. 한 번 '가족 같은 직장' 어쩌고에서 엄청나게 착취당한 사람은 '가조...' 만 나와도 경기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 그렇게 나빠요?" 라고 묻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어떤 남자를 만나면 인생 망하는지 얘기 들을 필요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시댁 십 년 수발하다가 드디어 못 참고 폭발하니 "우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어딨다고 그래?" 라고 말갛게 되묻는 남편 이야기 못 들어본 거다. "그냥 좋은 사람들끼리 일하는 건데 고용계약서가 필요해?" 하는 사람도.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란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는 거.
그래도 예민하다 손가락질하기 전에 왜 예민해졌어야 했는지, 단순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어떤 맥락을 함축하는지 생각해 봤으면.
뜬금없는 덧: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라는 말이 젤 무섭다는 남자들 꽤 있는데, 그 말이 왜 무서운가. 그 질문이 나오는 상황이 뭔지 딱 아니까 그런 거 아닌가. 같은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