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일
남자들이 역차별 얘기할 때에는 늘 따라오는 이미지가 남자에게서 호의와 관심으로 이득을 취하는 (젊고 예쁜) 여자인데.
반전.
나 솔직히 이해한다. 사람이 뭐 보통 자기 살아온 만큼만 세상을 보기 마련이고, 난 여자 어찌 사귈 줄 몰라 하는 젊은 남자들 하소연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해한다.
여성의 시각은 완전히 지우고 남자의 시각으로만 보자면.
10대 남자. 성욕이 끓어 넘친다. 여자랑 어떻게 좀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그들에게 작업 걸어주는 여자는... 없다. 나서서 호의를 보이려고 해도... 징그러워하는 이가 대부분일 테다. 그들의 목표는 여성에게 환심을 사서 섹스 쪽으로, 그것도 아니면 연애라도 좀 해보는 것. 그 생각을 하루 깨있는 동안 수없이 한다.
그런 그들에게 "누가 너에게 작업을 걸고 관심을 보이고 호의를 보이면 어떻겠냐" 하면 "당연히 감사하고 좋지!!" 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게 자기가 원하는 거니까. 그래서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나 같은 놈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평균의 외모만 되어도 그 수많은 남자들이 온갖 호의를 베풀 텐데. 나도 여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들에게 남녀의 관계, 그리고 섹스와 연애는 너무나도 남자 중심적인데다 이에 포르노, 같은 남자들 간의 음담패설 등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반복 주입하면서 더욱더 이성애 남자의 시각으로 굳어진다. 여자의 시각은 관심 밖.
만약 성관계가 여성이 남성의 고환을 걷어차는 거라면. 여자들이 그걸 해보고 싶어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지나가는 남자에게 작업을 건다면. 커피 한 잔 사주고 "자 내가 한 잔 사줬으니까 살짝이라도 차보면 안 돼?" 한다면? 아니면 믿고 지내던 선배가 "야 내가 너한테 해준 것도 많은데... 딱 한 번만 세게 차보자. 한 번만." 이런다면, '작업'이라는 콘셉트에 '그게 왜 싫어??'란 반응을 보이진 않겠지. 작업에 넘어가면 불알 걷어차이는 건데.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역차별의 환상은 결국 이성애 남성의 시각에서, 성욕에 시달리는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 여성을 성의 상대로만 보다 보니까, 그리고 자신의 성욕구에 치중하다 보니까, 그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감이나 짜증은 이해를 못 한다. 오히려 자기가 기분 나빠한다. 그래, 내가 너한테 좀 잘 보이려고, 그래서 섹스...는 아니라도 연애라도 해보려고 작업 걸었다.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냐? 그게 그렇게 무섭냐? 내가 그렇게 징그럽냐?
이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더 빡치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여자에게 거절당한다 느끼니까. 서툴게 작업 걸었다가 성공한 적은 거의 없을 테고 자괴감만 느꼈을 테니까.
근데 그게 여자 잘못은 아닐 텐데. 네 성욕구 해결해주는 게 내 책임은 아니잖니.
그런 남자들에게 묻는다면. 내 욕구가 남자의 고환을 걷어차는 거라면, 그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싶다면, 그래서 어린 남자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밥 사주고 하는 거라면, 당신은 내가 사주는 커피를 "공짜 커피 개이득!" 이러면서 맛있게 잘 받아먹을 수 있는가. 어머 난 어린 남자니까 성기만 좀 걷어차이면 공짜 밥이 생기네 룰루랄라 할 것인가. 술 마시면 남자 바닥에 때려눕히고 걷어차는 게 '술버릇'인 사람에게 술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 과연 특권인가.
덧:
손아람 작가님 글 나도 봤는데, 난 내가 쓴 글과 같은 맥락으로 재밌게 읽었다. 여성으로서의 특권 (이라 하는 것은), 이성애 남자의 성욕을 바탕으로 한 시혜적 찝쩍거림이 대부분이다. 남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것은 사라진다. 대신 그냥 보통 사람으로 취급받는 특권이 생긴다. 레스토랑을 거부했을 때의 불이익이 없어진다. 스토커를 거절했을 때의 폭력의 위험이 사라진다. 그걸 다 경험해본 여자들은 차라리 그냥 사람으로 대해 달라 하는 거고.
원글:
https://www.facebook.com/aramgimson/posts/1664020466988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