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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4. 2018

끝의 시작 2.번역의 미래

2016년 12월 18일

번역일은 절대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과, 사람의 판단을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를 자르지 못할 거란 의견이 자주 보여서.

나도 번역해서 용돈 자주 벌었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번역가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예전에는 천 명의 번역가가 있었다고 하자. 그 중 500명은 실력이 그냥저냥이고, 100명은 뛰어나고, 50명은 문학 작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자.


1) 출판사가 외국 책을 번역하려고 한다. 최고 번역가는 천만 원이고, 그냥 그런 번역가는 백만 원.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잘 팔릴지 잘 모르겠고, 출판사 사정도 좀 안 좋다. 그래서 싼 번역가를 고용한다.

싼 번역가는 여러 가지 맡아서 하다 보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머리를 굴린다. 그래서 구글 번역기로 초벌 번역을 한다. 구글 기술이 점점 나아지면서, 초벌 번역을 고쳐야 하는 경우도 점점 줄어든다. 싼 번역가는 이 방법으로 예전에는 한 권에 3개월 걸리던 것을 이젠 한 달로 줄였다(이 얘기가 약 3년 전 얘긴데 구글이 번역 알고리듬을 이번 해에 업데하면서 번역 질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3명의 싼 번역가가 할 일을, 한 명이 맡게 되었다.

그리고 출판사는 일부러 외국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인기 있는 기사를 자동 번역해서 사람들이 클릭하게 하고, 그 광고 수익으로 버는 쪽이 더 낫겠다고 계산해서 출판사를 접어버린다!!


2) 박사 학위 논문 쓰는 학생이 번역가를 구한다. 솔직히 누가 잘 하는지 잘 모르겠고 복잡하다. 구글 번역으로 하니까 그럴듯하게 보인다. 번역기로 돌려서 영어 원어민에게 손만 좀 봐달라고 한다.

그러므로, 예전 같으면 번역가에게 맡겼을 일이 아예 없어졌다.


3) 소프트웨어 회사가 현지화 작업에 들어간다. 번역가를 구하려면 인건비 들고 사람 관리하는 플젝 매니저도 구해야 하고 하지만, 자동 번역기로 쓰면, 한국어 같은 언어는 좀 구릴지라도 가격이 1/100 밖에 안 든다. 프로그램 릴리즈 해보고, 잘 팔리면 한국어 판 번역가는 나중에 구하자라고 결정한다. 프로그램 풀었는데 잘 안 팔렸다. 한국어 번역은 걍 때려쳤다.

그러므로 예전 같으면 번역가에게 맡겼을 일이 아예 없어졌다.

이런 식으로 자리가 없어진다. 물론 최고 실력의 번역가는 늘 필요하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만 명이 필요했을 것이, 이제는 50명만으로도 된다거나, 그런 식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그 사람들도, 자신이 작업한 내용을 전산화 시키면 다음 일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자기 지식을 전산화 하게 되고, 이렇게 하면서 그 프로그램 돌릴 줄 아는 두세 명을 고용하면 자신의 작업 속도가 열배로 빨라진다. 그러면서 또 초보 번역가의 자리가 없어진다.


노동자를 자르지 못할 것이다란 말


우린 기술의 발전을 보면서, 돈 욕심에 눈이 먼 자본주의 돼지 사장이 노동자를 잘라버릴 거라고 상상하는데 사실은 우리 자신이 점점 일자리를 없애버리는 쪽이 더 가깝다. 바로 위에서 말했던, "박사 학위 학생이 번역가를 찾는" 시나리오가 좋은 예다.

택배를 예로 들어보자. 어떻게 하면 고용이 더 늘어날까? 내가 직접 가서 가지고 오는 쪽이 제일 고용창출이 크다. 그 장소로 움직여야 하면서 운송업 자리를 늘리고, 가는 길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매출을 늘린다. 거기 도착해서는 창구 직원과 얘기해야 하니까 그 회사에서는 창구 직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온다.

이 서비스를 우편으로 대신하면, 한 사람의 집배원이 몇천 배의 효율로 물건을 배달한다. 이것이 약 20년 전 우리 사회였다. 지금은? 물론 택배 자체는 사람이 한다만, 택배가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확인은 컴퓨터로 가능하다. 이런 편의 하나로, 전화 받고 상담해주는 자리가 수천, 수만가 없어졌다. 주민등록 등본 떼러 가는 일도 인터넷으로 하면서, 동사무소 자리가 몇 개 없어졌다. 물론 이런 일은 딱히 하고자 싶은 사람들이 별로 없으므로 우린 별 상관 안 했다. 그렇지만 세무사 사무실이나 변호사 사무실, 약국을 보자.

세무사가 10명을 거느리고 처리했어야 할 일을, 기계학습으로 무장된 소프트웨어로 이젠 1명만 고용하면 된다고 하자. 일자리가 9개 줄었다. 대신 세무사는 처리 가능한 일이 훨씬 늘었고, 뭔가 잘못됐으면 다시 하는 것은 5분밖에 안 걸린다. 인사과도 필요 없고 회식도 필요 없다. 당신이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운전할 때 블랙박스를 달고 운전기록을 보험회사에 지속해서 보낸다면 보험금이 반의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동 업로드된 운전 기록이 있으면 사고 처리도 훨씬 간단해지고, 거기에서 또 일자리가 확 줄어든다.

그 많던 비디오 가게는 어디로 갔을까. 당신은 고용 창출의 의미에서 계속 비디오 가게를 다닐 것인가, 아니면 월정액으로 무제한 텔레비전/영화/시리즈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택할 것인가?

당장 몇 장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서류가 있으면, 당신은 시간당 5만 원의 최고 번역가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럭저럭 내용은 알아볼 수 있는 번역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것인가?

집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싶다면, 당신은 전화해야 하고 와달라고 해야 하고 건당 몇십만 원 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온라인으로 내 집 도면도를 업로드하고 몇 가지만 선택하면 수십 가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서비스를 먼저 해 볼 것인가?

병원에 간다면, 당신은 일부러 약국에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 건강 기록을 다 가지고 있고 집으로 따박따박 배달해주는 자동 약국 시스템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자리가 줄어든다. 그 업종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닌데, 우리 모두가 선택하는 편의로 인해 사회는 점점 변해가고, 우리는 서로의 설자리를 점점 좁게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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