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8일
사실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나 컴퓨터가 대체하는 것은 무슨 악랄한 음모도 아니고, 자본주의 재산가들의 음흉한 속셈 때문도 아니다. 우리 자신들이 편의를 위해 선택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거시적으로 마켓을 형성하고, 그에 우리 중 사업 수완 있는 이들이 반응하여 좀 더 좋은 서비스를 내놓고, 그것을 우리는 또 선택하는 그런 방식이 되풀이되어가면서 일자리가 점점 없어져 가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 일자리들이 정말 좋은 일자리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운기 때문에 농촌 일자리가 수만 개 줄었다고 볼 수 있고, 반대로 70대 노인도 일손 없이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동번역기 때문에 번역 일자리 수만 개가 줄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사실 그리 뛰어난 품질은 아닐지라도 자동번역기 서비스가 있어서 사람들은 아예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보다는, 큰돈 지불하지 않고 아주 빠르게 어느 정도 뭔 말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스카이프는 이번 해에 자동 통역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영어-스페인어가 자동으로 동시통역되는 서비스이다. 이것 역시, 최고의 동시통역가에게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통역가 구할 돈도 여유도 없는 사람에게는 공짜로 제공받을 수 있는 좋은 서비스다.
우리의 적은 그러면 누구일까. 여기에서 '적'은, 경운기를 쓰는 70대 노인이다. 원서로 책을 읽으면서 자동번역기를 돌리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우리 자신들이다.
변호사를 예를 들어보자. 지금 법대 다니는 이들에게 최고의 적은, 신기술로 무장한 기존 변호사들이다. 지금까지 쌓아둔 경험과 노하우로 이들은 벌써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계약서를 쉽게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 (이건 뭐 벌써 나온 지 오래다)로, 예전에는 혼자 절대 못 할 일을 이제는 열 명 몫을 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소송 준비한다고 서류 읽고 해야 했을 일이 이제는 자기의 노하우로 기계학습 프로그램을 훈련해서 백배로 빨라진다. 기계학습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다. 이 사람 경험에, 강남 백마 아파트 사람들이 좀 사기꾼이 많다고 하자. 그리고 송금한 사람이 조땅콩이라면 어느 범죄조직에 연루되어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자. 그러면 자료 검색할 때 "조땅콩 이름이 뜨면 따로 분류", "강남 백마 아파트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은행 거래 내역 조회" 뭐 이런 식으로 설정해두면 일이 훨씬 줄어든다. 이런 노하우가 수백 수천 개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자기 방식으로 몇백 더 쉽게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덜 할 수 있으나, 새로운 사람 구해서 월급 주고 교육하고 인사과에서 관리하고 하는 것에 비해, 10분이면 되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낫다.
어린이 방송의 예를 들어보자. 어린이 동요를 작곡하는 것, 사람이 할 것 같은가? 사실 음악/작곡은 상당히 수학적인 면이 많아서, 인공지능으로 음악 만들어내는 프로그램 많다. 뭐 대단한 영화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바뀌는 어린아이들용 음악이라면, 그냥 어린이 동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까? 이미 노하우가 풍부한 작곡가라면 어떤 식의 분위기에는 어떤 곡이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에 따라서 프로그램 세팅을 바꿔서 만들어낼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첫 직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닐 다이아몬드는 방송국에서 어린이 동요 작곡을 십 년 했다던가 그랬다. 노하우 없는 새내기 변호사는, 아래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하우를 쌓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음악과 나와서 아직 경험 없는 젊은이는 어린이 동요나 라디오 광고 음악부터 만들면서 경험을 쌓아가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1) 그런 자리가 현저히 줄어들고 2) 그런 자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미 상용화된 프로그램을 쓸 줄 아는 경력직을 선호하고...
결정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는 의학의 발전으로 아직 버티고 있고, 그 후 세대 역시 평안한 시대에 태어나 교육받을 거 다 받아서 자기 자리 꿰차고 있으며, 만만한 세대가 없다. 경기 안 좋다 보니 다들 일자리 붙잡고 버티고 있다.
여배우들을 보자. 20년 전만 해도 새내기 여배우가 계속 등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여배우가 잘나간다 해도 서른 지나면 딱 나이가 보이니까, 신인을 발굴해야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40대, 50대 되어도 팽팽하다. 조금 보정하면 몇십 년 젊은 역할도 소화 가능하다. 당신 같으면 여주인공에 니콜 키드맨을 쓰겠는가, 전혀 입증되지 않은 20대 초반 신인을 쓰겠는가? 그런 식으로 유명한 여배우들이 40대에 쟁쟁하게 버티고 있고, 30대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인구 전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문화 콘텐츠도 나이든 이들을 상대로 한 내용이 많아지고, 여배우 역할도 점점 넓어진다. 20대의 신인 여배우에게 지금 세대는 훨씬 더 뚫고 들어가기 힘들다. 전지현이 데뷔했던 것이 90년대인데, 그녀는 아직도 풋풋하고 잘 나간다. 20년 전 같으면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 드라마 제작은 어느 정도 도박인데, 이왕이면 입증된 배우를 쓰는 쪽을 택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쩌라고.
정부에서 보장하는 '기본소득' - 이전 글에 댓글 다신 분들이 말한 내용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나도 그런 식으로 갈 거라고 본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서비스 업종 마저도 줄어들면 더 이상 갈 곳은 없지만, 예전에는 90%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훨씬 적은 수로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듯이, 우리도 꼭 일해야 돈을 버는 건 아닌 시스템으로 갈 거라고 생각한다. 큰 기업에서 내는 세금이 정부로 흘러들어가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정부에서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과반수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일자리가 없어질 뿐이지, 다른 돈을 버는 방법은 많을 거라고 본다.
유투브에서 비디오 올리는 것만으로 돈 버는 사람들 많다. 중간 유통단계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돈 벌기가 더 쉬워진 것이다. 작가들은 책을 써서 100원에 팔아도, 사는 사람만 많으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 출판사를 통하면 3천 부 팔아봤자 백~3백만 원. (인세 5%에서 13% 정도). 쓰자마자 바로 출판하고 100원에 판다고 하면, 3천부를 팔면 30만 원이지만, 9천 원이면 안 샀을 사람들이 100원이면 산다고 치고, 100분의 1로 가격이 줄었으니 백배로 더 잘 팔린다 하면 - 3천만 원(사실 지금도 이북으로 수입이 꽤 된다고 들었다.). SNS로 마케팅이 훨씬 쉬워지고, 나에게 관심 있을 만한 사람들 찾기도 쉬워지면서, 음원 팔기도 쉬워질 거라 생각한다.
뭐 꼭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게임을 보자. 사실 진짜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엄청난 문화혜택을 누리는 거라고 보는 편인데, 한 달에 몇만원 내고 하루 종일 게임해도 되잖소?? 의식주가 저렴하게 해결될 수 있다면 - 그리고 그렇게 해결될 거라고 본다 - 아주 싼 가격으로 즐겁게 놀 수 있고, 일 안 해도 되고, 뭐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만. 나처럼 공부하는 게 꿈인 사람은 평생 공부만 해도 되겠고, 음악 하고 싶은 사람은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되니까 열심히 음악 하면 되고. 글 쓰고 싶은 사람은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 그리고.
...이상은 편하게 놀고먹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맞벌이 주부의 야무진 꿈이었습니다.
(그, 근데 혹시 나중에 블로그라도 가지고 먹고 살려면 진짜 럭셔리 블로그 되도록 노력 해봐야 되나???) --> 라고 그 때 썼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꿈은 그냥 야무진 개꿈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