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by 양루키

나는 안 바빠 보이는 재주가 있다.
언제나 여유 있어 보였나 보다.


어린 시절 나의 롤모델은 캡틴 잭 스패로우였다.
혼란 속에서도 미묘하게 여유로운 표정,
다 망해가는 상황에서도

위트와 재치로 살아남는 그 태도.
겉으로는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실상은 속으로 온갖 계산과 고민을 거쳐
기어코 빠져나오는 그 방식이 너무 멋있었다.


내 여유도 그런 결을 지닌 것 같다고 믿었고,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일이 몰려도 웃으며 여유롭게 처리하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꿀보직이라 좋겠네”라고만 했다.
내가 속으로 얼마나 힘들어도
어두운 부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
오히려 “네, 개꿀이에요.”

하고 웃으며 넘기며 버텼던 것 같다.
(물론, 정말 꿀보직이긴 했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항상 들리던 평가는
“일은 잘하는데 열심히 안 함.”
그 말을 듣고 억울해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오… 약간 천재 같고 멋있잖아?’
그렇게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면…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퇴사 이후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
아니, 사실 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우리 서비스에 내 인생을 걸었다.
정말 진지하다.


잠들기 직전까지 AI agent에게 일을 시키고,
달리면서도 슬랙 알림에 반응하고,
아침이 오면 다시 일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서 풍기는
그 ‘여유로운 결’ 때문인지
가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 해보는 건 어때?”
“이런 서비스 한번 만들어보는 건?”
“너도 이제 이직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들이
나는 조금… 상처가 된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내가 절실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 나온 레고 블랙펄 갖고 싶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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