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사 Feb 28. 2024

약산마을

우물, 안목, 교감

우물 밖 여고생


여고생이 우물 밖으로 나왔다. 우물 밖의 세상을 여행한다. 여행지에서의 단순 방문을 넘어, 우물 밖의 현지인들과 교감한다. 교감을 통해 비로소 여행지를 이해한다. 여행작가 슬구의 수필 '우물 밖 여고생'에는 그러한 교감이 잘 녹아들어 있다.

슬구 - 우물밖 여고생 (2022 리커버)

그동안 이곳저곳 투고해 온 '공간 기행문'들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나의 기행문은 그저 위치 정보의 나열뿐이 아니었던가. 직접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을 얻었던가. 나는 여지껏의 '공간 기행', 그리고 '공간 기행문'에 대해 재고하였다. 답사를 한 후에는, 그만큼의 소득과 의의가 있어야 하기에. 답사를 함으로써만 얻는 것이 있어야 하기에.


갈까, 말까


2024년에는 무계획적인 답사를 줄이기로 했건만,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어찌 참으랴. 지도를 둘러보다 고양 중산동 일대의 인위적인 구획을 지닌 마을이 내 눈에 들어왔고, '약산마을'이라 불리는 그곳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답사를 줄이겠다고 했지, 언제 아예 안 가겠다고 했던가. 나와의 약속을 깨는 것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약간의 합리화를 하였다. 시간이 허락한 날, 바로 그곳에 내려준다는 771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나고 나서 "갈 걸"이라고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이었다.


당신에게 이 중정은 어떻게 보이나요


고양 주교동 '우일종합시장' (2024년 2월)

"우일종합시장, 여기 궁금하다."

고양시청이 있는 주교동에서 도중 하차했다. 나도 그 이유를 쉬이 설명하기 어렵다. 지도를 둘러보다 눈에 띄어, 급히 내려서 가고 싶었달까. '종합시장'이라는 이름에 오래된 '상가아파트'의 모습을 기대했달까. 중정이 있을 것 같았달까. 모르겠다. 그냥 한 번 보고 싶었다.


놀랍게도 내 예상은 모두 들어맞았다. 상가아파트에 내부로 들어가니 펼쳐지는 중정. 그곳으로 내리쬐는 햇살에 그저 아름답다고만 느낀 나는 답사 동지 '오리'에게 사진을 찍어 보여 주었다. '오리'는 말했다.


"교도소 같다."


당신에게 이 중정은 어떻게 보이나요.


약산마을, 하사관주택


다시 771번 버스에 올라탔다. 고양시청을 지나고, 달려가는 길에 산황, 식사와 같이, 같은 고양시에 살면서도 익숙지 않는 지명들이 스쳐 지나갔다. 식사동을 지나니 약산마을은 금방이었다.

고양 중산동 '약산마을' (2024년 2월)

약산마을에 대해 전하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하사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자료를 더 구하기 쉬울 듯하다. 약산마을에 대한 그나마 상세한 기술을 1991년 고양문화원에서 편찬한 '고양군 지명유래집'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름에서도 보이듯, 하사관, 즉 부사관들을 입주 대상으로 삼아 조성되었단다. 군 주둔지 근처로써 일종의 관사와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교감이거늘


고양 중산동 '약산마을' (2024년 2월)

알려진 자료가 부족한 약산마을. '약산'이라는 이름은 어찌 붙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저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떻냐."따위의 질문에 대한 답까지,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교감이 필요하거늘. 직접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어야 하거늘. 나의 안목은 교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할 이는 나였다. 우물 밖에는 바로 그 안목이 있을 터이니. 


평상


수박의 겉을 핥기만 하고, 눈에 들어온 것은 빌라 앞마당의 평상이었다. 손수 만들어 놓았을 지붕과 가져다 놓은 의자, 물, 믹스 커피. 소박한 정성을 느끼기 위함으로라도 이곳에 다시 오기를 기약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무에 걸린 시계가, 달력이, 수도 없이 돌았고, 뜯겼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이라는 기약이었지만 말이다. 

나비야 나비야.

약산의 두 나비야.

너희들의 강역은 이 골목이 전부이더냐.

골목의 너희들의 우물이더냐.

조금 더 위로만 올라가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나비들과도 '교감'해 보지 않겠더냐.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 나갑니다.


글 철사

사진 철사


작성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은 출처 표기 하에 자유롭게 인용 가능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삼송리 공무원 주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