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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Aug 02. 2021

4-3. 낭만적인 아레키파의 밤

[아레키파]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 (Monasterio de Santa Catalina)


수녀원은 도심 한가운데 있었지만, 도시와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듯 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고요하고 차분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수녀원 초입은 주황빛으로 밝게 칠한 벽이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꽃을 심은 화분이 줄지어 있어 주황색의 벽과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정원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색감이 화사해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사진을 남겼다. 곧이어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안내를 받으며 수녀원을 둘러봤다.





마을 안 마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생활에 필요한 시설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고, 규모도 컸다. 옛날 수녀들은 어린 나이에 수녀원에 보내졌고, 4~5년 동안 수녀원 내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수녀원에 들어온 순간부터 평생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을 수녀원에 입원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소중한 딸을 왜 수녀원에 보냈을까? 집안의 재력을 과시하고 명예를 얻기 위함이었을까? 현재까지도 보존된 물품 목록을 보면, 독특하게도 중국 청자가 많았다. 당시 가장 귀중한 물건을 수녀원에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자신의 딸이 좀 더 좋은 여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또한 재력 과시용으로 느껴졌다.


수녀원에는 하인들이 수녀들과 함께 거주했다고 한다. 하인들은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거주했는데, 어느 날 대지진이 일어나자 하인들이 모두 수도원을 나가게 되었고, 그날 이후부터 수녀님들이 살림과 요리를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화덕은 주로 빵을 굽거나 기니피그 요리를 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니피그를 키우던 공간에는 지금도 기니피그를 기르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 크기가 작아서 이 녀석을 도대체 어떻게 먹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주 귀여운 기니피그는 치킨 맛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궁금했다. 


수녀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생활 공간이 나왔다. 공용 빨래터로 사용하던 공간이 나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물은 졸졸 흘러 내리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조화를 이뤄 평화로운 기운이 더욱 진하게 맴돌았다. 



기니피그 사육장
한적한 빨래터




투어 말미에는 안나 수녀님의 일생에 관한 설명을 듣고, 수녀님께서 실제 착용하신 물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기적을 두 번 행해야만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데, 기적을 한 번만 행한 까닭에 성인이 아닌 복자가 되셨다고 한다. 수녀님의 사진과 유품을 간직한 공간, 수많은 꽃이 놓여있고, 초와 향을 피워 추모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수녀님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존재였고, 덕망이 높으셨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긋나긋한 가이드의 목소리와 수녀원에 내리 앉은 차분한 분위기 덕분에 평온한 마음으로 수녀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낭만이란 무엇인가? 아레키파의 밤


관람을 마치고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엘 슈퍼(El super)에서 만났다. 이곳은 장을 보기에 아주 좋았다. 편의점보다 조금 더 크고 물품 종류도 많아서 저녁식사를 위한 식재료를 모두 구매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저녁은 치맥이다! 치킨을 뜯으며 각자 보고 느낀 내용을 주고받았다. 재래시장에 방문한 팀은 그곳에서 마신 과일주스가 너무 황홀했다고 한다. 눈앞에서 생과일을 갈아주고 한 컵 가득 주스를 따라줬는데, 주스를 다 마시자 한 컵 더 따라주었다고 한다. 페루 인심에 반하고, 신선한 과일주스에 한 번 더 반했다고 하는데, 고작 과일주스에 이토록 감동하는지 궁금했다.



저녁은 치맥
아레키파인들의 자존심, Arequipena




날이 저물어 갈 무렵,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보랏빛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게 불어왔다. 맥주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살랑이는 바람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하늘의 모습이었다.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난 후 받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하늘에 어둠이 깔리면서 가로등이 노랗게 빛났고,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시작하자 천천히 방으로 돌아갔다.




숙소 루프탑에서 본 야경




S와 B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는 다음 일정을 위해 먼저 자기로 했고, 나와 K는 아레키파 밤마실을 나섰다. 밤바람이 가을 밤공기처럼 서늘해서 얇은 셔츠를 걸쳐야 했다. 숙소에서 대성당까지는 도보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레키파의 밤은 낮만큼 아름다웠다. 아니, 낮보다 더 아름다웠다. 낮에 봤던 대성당과 광장, 분수, 아치형 구조물은 조명을 받으니 낮과는 다른 기운을 발산했다. 야경이 매력적이었다. 분수대 앞에 서서 대성당을 봐도 좋았고, 대성당을 등지고 분수대와 아치형 구조물을 봐도 좋았다. 들뜬 마음에 건축물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었다.


구경하던 중 우리는 문득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바로 분수대의 위치였다. 대성당은 가운데 대문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을뿐더러 분수대는 대성당의 중앙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계획도시로 지어진 지역인데, 대성당은 왜 대칭 구조로 짓지 않았을까? 1950년대 대지진의 영향으로 재건축할 때 달라졌던 걸까? 궁금증도 잠시. 아레키파의 야경에 취해 한동안 광장에 서서 홀린듯 구경했다. 낮과 밤이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오늘의 가계부


콜카캐니언 투어 620솔

아레키파 터미널~아레키파 역사지구 택시 이동 12솔

중국 레스토랑 점심식사 57솔

대성당 입장료 & 가이드 50솔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 입장료 80솔 (1인당 40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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