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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Aug 06. 2021

4-4. 콘도르, 그리고 콜카 캐니언

[아레키파]


대자연을 감상하며 콜카 캐니언으로 가는 길


새벽 4시, 졸린 눈을 비비며 콜카캐니언 투어에 갈 준비를 했다. 밴은 시간 맞춰 호텔 앞에 도착했고, 우리는 밴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밴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어느새 창문에는 서리가 끼었고, 창 밖으로 어렴풋이 하얀 눈이 보였다. 차량 내부는 제법 쌀쌀했다. 밴이 멈추더니 가이드가 10분 정도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겨울이라고 해도 될 풍경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해발 고도 5,360m의 Volcan Chucura라는 고산의 정상이었고, 우리가 밟고 있는 눈은 만년설이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만년설 위에 서 있었다! 산봉우리와 가파른 절벽 곳곳에도 흰 눈이 살포시 쌓여 있었다. 만년설을 만졌는데, 금방 녹았다! 일반 눈하고 다를 바 없었다. 제법 쌀쌀해서 서둘러 밴으로 들어왔다. 





산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를 타고 고산지대에서 내려오자 높게 솟은 돌산으로 둘러싸였다. 도로 아래로 길게 깎인 절벽도 장관이었다. 기나긴 산길을 내려오니 치바이 마을이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 사는 동네가 나왔다. 산의 형세를 따라 생겨난 목초지 위에 소, 말, 염소, 라마 등 다양한 가축들이 팔자 좋게 풀을 뜯으며 목가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
저 멀리 보이는 치바이마을



조금 더 이동해서 아침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식당 내부는 아늑했다. 특히 화려한 페루 스타일 식탁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위로 정갈하게 음식이 마련되었다. 조식은 빵과 계란후라이, 잼 등 기본적인 메뉴가 나왔다. 코카차도 마셨다. 향과 맛은 우엉차와 비슷했고, 한잔 마시니 정신이 조금 맑아진 듯했다. 날이 약간 서늘해서 따뜻한 차로 몸을 좀 녹일 수 있었다.



코카차



식사를 마치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작은 시장에 내렸다. 판매 상인들 대부분은 할머니들이었고, 마카 지역 전통복장을 입고 계셨다. 요금을 받고 새끼알파카와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하는 분도 있었다. 기념품은 열쇠고리, 알파카 인형, 팔찌처럼 작은 기념품부터 알파카 털로 짠 스웨터, 목도리, 담요까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콘도르 인형탈을 쓰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오전임에도 태양이 무척 뜨거웠는데, 열심히 일하는 그분의 모습에 동정심이 생겼다. 남미 여행 자금 마련을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는데, 인형탈 아르바이트도 해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그분의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콘도르 안에 사람 있어요


기념품 시장에서 콘도르 전망대까지 50분 정도 이동했다. 점점 주변 산세가 더 험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협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망대에 가까워지자 콘도르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밴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창문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커다란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콘도르다!


콘도르와 콜카 캐니언 (Codor & Colca Canyon)


흥분된 마음으로 서둘러 밴에서 내리니 콘도르가 보였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전망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콘도르를 구경하고 있었다. 콘도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듯 전망대 위를 날고 있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날지 않고, 기류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는 듯 했다. 제 멋대로, 도도하게 드넓은 하늘을 활강하는 자태가 무척 아름다웠다. 삶의 태도로 본받고 싶을 만큼이나 말이다. 



콘도르와 콜카 캐니언



머리 위로 지나가는 퍼포먼스도 보여줬는데, 가까이서 보니 몸집이 상당히 컸다.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날개를 활짝 펴면 일반적인 성인 남성과 맞먹을 만한 길이였다. 일반 독수리보다 훨씬 더 커보였다. 환상적인 콜카 캐니언 위에 걸려 있는 구름 몇 조각,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콘도르의 모습을 넋 놓고 감상하고 있는데, 콘도르 한 마리가 더 나타났다. 무려 콘도르를 세 마리나 마주했다. 콘도르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미신이 있는데,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를 봤으니 9대가 덕을 쌓은 모양이다. 콘도르 운과 날씨 운이 함께 따라준 투어다. 머지 않아 콘도르는 흥미를 잃었는지 저멀리 날아갔고, 우리는 협곡을 감상하러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콘도르 3마리



"대자연" 콜카 캐니언을 마주하자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단어. 아무리 인간이 첨단 기술을 사용해서 조형물을 만든다고 해도, 이만한 웅장함과 신성함은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절경이다. 거대한 산맥은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가파르게 깎여진 바위산은 깊은 골짜기를 형성했고,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아주 시원했다. 감탄만 나왔다.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보려고 해도, 육안으로 보고 있는 모습과 신성한 기운까지는 핸드폰에 담을 수 없었다. 우선 사진과 영상을 찍고 난 후, 콜카 캐니언을 눈에 담았다. 계속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절경이다. 콜카 캐니언 꼭대기에 걸려 있는 구름 몇 조각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신선들이 구름 위에 앉아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면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을 것만 같은 장관이었다. 한국에는 이만한 높이의 산과 협곡이 없기에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콜카 캐니언



콜카 캐니언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삼각대를 설치했다. 우리의 단체사진 시그니처 포즈 점프샷으로 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곳은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 중에서도 고산지대였다. 조금만 걸어도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곳에서 젊은 남자 4명이 사진 찍겠다고 폴짝거리고 있으니 제법 웃긴 광경이었겠다. 우리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데 열중했다. 우리는 사진찍는 데 진심인 한국인들이다. 점프 몇 번에 금방 체력이 바닥났다. 조금 힘들었다. 머리를 옥죄어 오는 지끈거림과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신이 났다.




우리가 서 있는 콜카 캐니언은 구름을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높은 고산지대에 속했다. 근두운이라도 빌려 하늘을 날아다니며 고산을 둘러보고 싶을 만큼 구름이 가까이서 머물렀다. 구름을 타고 날아다는 건 할 수 없었지만 대신 구름을 배경삼아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구름을 내려다 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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