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신의 거울, 우유니
뜨거운 열기를 맹렬하게 내뿜으며 이글대던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이더니 이윽고 수면 위로 푸른 하늘이 스며들었다.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던 형상이 또렷하게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듯 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바닥은 마치 거울처럼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신의 거울이라는 별명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잠시나마 현실이 아닌 낯선 공간에 온 것만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우유니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람했다. 머리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의 높이가 낮아졌고,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조메르는 우리를 부르더니 태양을 등지고 자세를 취해보라고 했다. 역광을 활용한 일종의 그림자 놀이 컨셉의 작품이 나왔다. 사진 속 태양은 에너지를 가득 채운 원기옥을 떠올리게 했고, 나는 에너지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초인처럼 보였다. 촬영 기법을 습득한 우리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우유니를 한껏 즐겼다.
태양이 지평선과 맞닿자 하늘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마치 온화한 손길로 어루만지듯 따스한 빛이 우유니 일대를 감쌌고, 설렘과 신남으로 요동치던 마음은 잠잠해지더니 그 자리에 고요함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저물어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노을을 감상하며 체력을 조금 회복한 후,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태양의 절반이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자 형체는 일그러졌지만,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선은 선명해졌다. 그림자 놀이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더욱 좋은 환경이 되었다.
태양이 지기 시작하자 반대편에서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태양과 달을 동시에 떠있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태양의 기운이 더 강한지 보름달은 얼굴만 내놓은 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자신이 나설 차례가 아님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몸을 돌리면 달을 볼 수 있는 신선한 경험, 소금 사막이었기에 가능했다.
우유니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
우유니 소금 사막의 절정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는 황혼의 시간에 등장했다. 천국이 존재한다면, 우유니의 이 순간 모습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만큼 장관이었다. 황금빛을 띠던 태양을 덮은 구름이 파스텔톤의 연분홍빛으로 물들더니 순식간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하고 태양의 주변은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은 마지막까지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몇 번이고 시계 태엽을 되감아 흘러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시간의 흐름이 또렷하게, 아주 빠르게 느껴졌다.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의 흐름을 이토록 오래 관찰한 적이 또 있었을까?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은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밤은 찾아왔다.
이 장면을 보고 어떠한 수식어로 표현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고 해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아름답다’, ‘몽환적이다’라는 표현으로 이 순간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잠시 핸드폰은 내려놓고, 노을이 지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봤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비로소 보름달의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를 덮어주던 포근한 빛이 사라지자 살갗이 드러난 부분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무척이나 쌀쌀하게 불어왔고, 어둑어둑해진 우유니의 저녁 하늘을 뒤로 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차에 앉고 나서야 하얀 얼룩으로 물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기를 한가득 머금은 바지는 우유니에서 열정적으로 놀았음을 증명해주었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소금 사막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 아래서 원없이 놀았음에도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휴식
다음날 새벽에 있을 야간 투어를 대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근처 마트에서 라면을 구매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샤워를 마쳤다. 하루 종일 활동하고 나서 들이켜는 라면 국물이 어찌나 맛있던지.. 언제나 먹어도 맛있는 라면인데 유독 더 맛있었다. 피로가 싹 가시는 맛! 우리가 묵은 숙소는 3인실이었기 때문에 침대는 regular 침대 2개와 extra 침대 1개만 있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K는 편하게 extra 침대에서 잤고 나머지 3명은 regular 침대를 붙인 후 가로로 나란히 누워 자야 했다.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하루 종일 우유니에 흠뻑 취해 있던 탓에 금방 곯아 떨어졌다. 잠깐의 달콤한 쪽잠으로 조금이나마 체력을 충전하고서 야간 투어를 떠나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심야의 우유니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