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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Dec 05. 2021

11-5. 마추픽추 Machu Picchu

[마추픽추]


마추픽추를 기다리며


새벽 4시,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잠에서 깼다. 지난 밤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불청객 모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데도, 피곤함은 전혀 없었다. 마추픽추를 보러 간다는 설렘에 눈이 번쩍 떠졌고 기운도 생생했다. 네 명 모두 쿠스코에서 가져온 판초를 걸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마추픽추행 버스를 타는 곳으로 나섰다. 날은 밝았지만, 아직은 새벽이라 공기가 서늘했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걸쳐 입은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대기 장소로 향했는데, 사람들은 어찌나 부지런하던지, 벌써 수많은 인파가 행렬을 이룬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나름 일찍 나온다고 아침식사도 간단하게 먹고 5시 30분에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대체 언제부터 기다린걸까?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광객들 중에서 한국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우리처럼 판초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은 십중팔구 한국인이었다. 역시 한국인들은 멋쟁이다.





무려 1시간동안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왔고, 마추픽추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추픽추 입구까지 약 30분 정도 걸렸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빙빙 돌며 올라갔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인상적이었다. 마을에서는 하늘 높이 치솟은 고산을 보려면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야 했는데, 어느덧 산을 내려다보는 위치까지 올라왔다. 조각 구름이 산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그리고 이곳의 고산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났다. 거대한 기암괴석에 진한 녹색빛 풀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마추픽추에 가까워질수록 나무 사이로 돌로 만든 집과 산봉우리가 얼핏 보였고, 기대감이 한층 부풀어 올랐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고산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했다. 장소는 협소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까닭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한 세월 걸렸다(화장실을 이용하려면 1인당 2솔을 내야하기 때문에 잔돈은 꼭 챙겨야 한다).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실 옆에 설치된 스탬프부스로 가서 여권과 수첩을 펼치고 마추픽추 스탬프를 꾹 눌러 찍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탓에 시간이 다소 지연됐는지 가이드가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고, 서둘러 올라갔다. 마추픽추 매표소에서는 문화유산 보호를 명분으로 소지품을 철저하게 검사했다. 공항 못지 않게 꼼꼼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모든 소지품을 바구니에 내려 놓고 금속 탐지기를 지난 다음, 티켓 확인까지 마치고 나서 마침내 마추픽추를 향해 걸어갔다.



마추픽추 스탬프 기념샷



마추픽추, 신비로운 공중 도시


설렘과 흥분된 마음을 가득 안고 입장했다. 걸어갈 때마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웃음이 흘러나오고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흙을 밟는 소리조차 경쾌하게 들렸다. 좁은 흙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거리는 짧았지만 길이 험하고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많아서 조금 숨이 찼다. 마침내 마추픽추를 상징하는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도착했다. 마추픽추에! ‘우와아아아....!’ 산봉우리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름다웠다. 어떤 수식어로 표현해야 현장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있을까? 높게 솟아있는 산봉우리에 아래로,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오랜 시간이 그 자리를 지켜 온 견고한 돌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고,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산비탈이 이어졌다. 쾌청하고 티 없이 맑은 하늘은 마추픽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마추픽추
뿌듯
신남



마추픽추의 자태에 매료되어 넋 놓고 감상하고 있던 우리 곁으로 가이드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기울이면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산봉우리에서 우람한 잉카인의 얼굴이 보였고, 마치 안대를 쓴 채 깊은 잠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편안히 누워있었다. 잠시 멍하니 보고 있으니 산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것이 정녕 대자연의 위엄인가?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인 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두 눈으로 감상을 하면서도 산봉우리를 배경 삼아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최대한 많은 사진을 남겨야 했다. 태양이 내리쬐는 날 판초를 입고 마추픽추까지 온 걸어 올라온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점은 마추픽추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촬영하면, 하나같이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한 것처럼 나왔다. 현실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사진 속 우리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추픽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콘도르의 마음으로



이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었지만, 시간이 다 됐는지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고, 가이드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속도는 빠르고, 페루식 영어인지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인 탓에 예의상 몇 분간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마추픽추의 풍경을 눈에 담는데 전념했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마추픽추 투어 시 주의할 점은 투어 경로는 오직 일방통행(One-way)이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자리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실시하는 정책인데, 곳곳에 관리자들이 배치되어 감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길도 좁아서 역주행을 한다면,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민폐를 끼쳐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으니 일방통행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 마추픽추 산봉우리를 최대한 감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올 것을 추천한다(가이드가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하지만) 이 점 때문에 두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했고, 우리는 사제 거주지역-태양의 돌-학생 기숙사와 콘도르 신전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둘러보기로 선택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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