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데로]
쿠바에서 와이파이 무료로 즐기는 방법
전날 와인과 칵테일을 주구장창 마셔댄 탓에 숙취 기운이 조금 올라왔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아침을 먹으러 메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곳은 뷔페식으로 운영됐는데, 규모가 상당히 컸다. 고기, 치즈, 파스타, 회, 샐러드 등 음식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전세계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의 입맛을 충족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맛은 그저 그랬다. 적당히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한 한끼였다. 식사를 마치고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로비로 향했다.
로비 앞 테이블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에떽사 카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카드 몇 장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어쩌면 버리고 간 카드 중에서 시간이 남아있는 게 있지 않을까?’
K가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하러 간 사이,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이파이 카드 3장을 주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결했는데, 와이파이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나머지 카드도 대략 20~30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와이파이 카드에 적힌 안내사항에 따르면, 본인의 와이파이 카드는 본인이 잘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내 행동은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게다가 카드를 놓고 간 사람들은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호텔에 투숙하는 이용객들 중 대다수가 가족 단위로 방문했는데, 금전적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와이파이를 쓰다가 중간에 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와이파이 카드 1장에 1cuc인데 돈 한 푼이 아까운 배낭여행자에게 그들이 버리고 간 카드는 무척 쏠쏠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맥주를 마셔야지! 인터넷을 실컷 쓰고 나서 질릴 때쯤 수영하러 밖으로 나갔다.
먹고, 마시고, 놀고.. 지상낙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
정오가 가까워지니 태양이 작열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수영 좀 하다가 맥주 한 모금 마시고, 배가 좀 출출하면 조각피자도 한 입하고... 따끈따끈한 피자와 달콤한 칵테일을 먹고 싶은 만큼 무한으로 즐길 수 있다니! 올인클루시브 호텔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사치다.
풀장에서 나와 해변으로 이동했다. 역시 수영장보다 바다가 좋다. 3일 내내 본 카리브해지만 몇 번을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햇살이 적당히 따스했다. 선베드에 자리 잡고 누웠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작은 책 2권과 (<노인과 바다>, <싯다르타>) S가 호텔 내 상점에서 구매해 온 시가를 가지고 해변에서 컨셉 사진을 찍었다. 비행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읽으려고 가져왔지만, 읽지 않았던 책이 이렇게 훌륭한 촬영소품으로 쓰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책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어제처럼 선베드에 누워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상했다. 카리브해,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 저 멀리서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젊은 남녀들의 환호성과 웃음소리, 따스한 햇살과 솔솔 밀려오는 졸음, 시원하게 두 볼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닷바람, 해변을 거닐면서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들... 올인클루시브의 풍족한 환경과 드넓은 카리브해의 분위기 덕분에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한 상태가 됐다. 바로 이게 진정한 힐링이지. 시간은 흘러 어느덧 하늘도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노을은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노을 자체도 아름답지만, 노을을 바라볼 때 여러 감정이 교차하다가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느낌은 언제나 참 좋다.
오늘도 신나게 즐기자, 바라데로의 두번째 밤
El rancho 레스토랑에 가기 전 메인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식사했다. 원래 허기만 간단히 채우려고 했지만, 수영을 하고 와서 배고픈 상태에서 먹다 보니 많이 먹게 되었다. 특히 돼지고기 구이가 어찌나 맛있던지.. 예상과 다르게 한껏 든든하게 먹고 옆 bar café 테이블에 앉아 색소폰과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색소폰 연주 소리가 청중을 압도했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마음 속에서 흥이 올라왔다. 쿠바와 색소폰, 그리고 칵테일은 환상의 조합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El rancho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을 했고, 입장 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 맞춰 문이 열렸고, 중후한 멋을 뽐내는 지배인이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메뉴판을 보니 어제와 메뉴 구성이 달라져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와인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데,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 3인조가 라이브 무대를 시작했다. 노래 한 소절을 부르자 범상치 않은 노래 실력임을 느꼈다. 손님들에게 신청곡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는 Depacito를 신청했다. 선곡은 탁월했다. 레스토랑은 보컬의 풍성한 성량으로 채워졌고, 관객석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Despacito 가사를 알고 있었다면 한국인의 떼창을 보여줬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웠다.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에피타이저, 스테이크, 와인 그리고 디저트까지 모든 조합이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네 명 모두 만족스러웠는지 이 레스토랑 때문이라도 하루 더 머무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실내공연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공연을 감상했다. 사실 너무 배가 불러서 한동안 앉아 있을 곳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공연이 진행중이었다. 다양한 테마로 댄스 공연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소화가 돼서 공연 중간에 객석에서 나와 칵테일을 들고 밤산책을 즐겼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고 유토피아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이틀 동안 원없이 놀았다. 언제 또 이렇게 근심, 걱정없이 놀아볼 수 있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진심을 다해 놀았다. 그렇게 놀고 놀아도 노는 건 질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