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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양선 Feb 17. 2024

내 것이 2개일 때 1개를 내어줄 수 있으신가요?

배려와 양보를 알려주는 훌륭한 네 살 스승님

    내 몫을 내어준다는 것이 양보라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배려인 것 같다. 이런 양보와 배려를 일상 속에서 마주할 때 나는 마음이 뭉클하다.


    나의 네 살 조카는 기본적으로 장난꾸러기다. 사람은 말뿐만 아니라 표정으로도 많은 것을 표현하다고 하는데, 조카의 얼굴을 보면 딱 알 수 있다. 얼굴에 쓰여있다. '나 장난꾸러기예요'라고. 웬만하면 자랑처럼 보일까 봐 조카의 사진을 누군가에게 잘 보여주진 않는데, 서로의 조카 얘기를 편하게 하던 중국어 학원 선생님의 조카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에 꺼내보이니 대번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우, 얼굴만 봐도 장난기가 가득하네요'


    그런데 그런 그녀도 내가 개인적으로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고 있으면, 장난기가 쏙 빠진 채 나를 걱정스레 들여다봐준다. 그럼 그 똘망똘망한 눈빛에 어려있는 걱정에, 내 마음속 똬리를 트고 있는 슬픔이라는 짚이 한 단 정도는 풀려나간다. 나는 그게 그녀 만의 배려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는 잠시 저편에 미뤄두고, 진정으로 걱정되는 마음을 꺼내 보이는 일.


    그런 그녀가 만 3세 때의 일이다. 나의 생일이 조금 지나고 언니네 집에 놀러 갔는데, 언니가 조카를 보더니 말했다.


“ㅇㅇ아. 이모 줄 거 있다며. 이모 줄 거라고 이모 언제 오냐고 기다렸잖아”


   조카가 내 생일선물로 준다고 본인의 돌고래 인형 두 개 중 하나를 내게 줄 거라며 기다렸다고 한다.


이모 거는 넥타이크타스야. 내건 샌디


   조카는 돌고래들을 위한 사랑스러운 이름도 이미 지어놨다. 참고로 이 무렵 조카는 본인이 가진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이름 짓기에 한참 재미를 붙이던 때였다. 아래 조카가 꽤 오래 키운 물고기 이름은 탈라였다. 그녀의 이름 붙이기는 주로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이름이었는데, 넥타이크타스는 즉흥적으로 뽑아낸 그녀가 붙인 이름 중 가장 긴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름 장인인 그녀조차 나중엔 붙인 이름을 까먹기도 했다.


아무튼, 왼쪽에 보이는 노란색 작은 돌고래 인형이 나를 위한 조카의 선물이고, 오른쪽 분홍색 돌고래인형이 조카의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조카만 할 때는 아무리 내가 두 개를 가지고 있어도 누군가에게 선뜻 하나를 양보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사실 지금도 내 것을 잘 양보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조카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학습의 힘을 믿는다. 물론 그 학습을 꾸준히 지속해 나갈 개인의 의지가 수반되어야겠지만, 양보와 배려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나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나는 훌륭한 스승님도 모시고 있고 말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삶 속에서  말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배려와 양보를 꽤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말 중 하나는 ‘불평은 굳이 찾지 않아도 지천에 널려있는데, 감사는 약간의 공수를 들여 찾아야 눈에 보인다’는 말이다. 배려와 양보도 비슷한 맥락으로 찾으면 생각보다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의 청첩장 모임이 있었다. 1차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두 명의 친구들이 나란히 나가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둘 다 문을 잡고 있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정말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처럼 보였다. 한 명이 이미 문을 잡은 상황 속에서, 다른 한 명이 또 문을 잡아주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이 일주일 내내 드문드문 생각났는데,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배려와 관련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1년 넘게 PT를 받던 PT 선생님과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 헬스장에는 “남을 배려해서 기구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걸 보고 내가 선생님께 질문했다.


“살면서 받았던 배려 중에 기억에 남는 배려가 있으신가요?"


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셨다. 그러더니 작게 탄식을 하며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제가 살면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정말 무수히 많은 배려를 받고 살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나는 게 없다니 내가 얼마나 그들의 배려를 간과하고 살았던 건지 갑자기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네요.”


우문현답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배려와 양보는 쉽게 과소평가된다. 그렇게 해주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드는 데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배려나 양보받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응당 그것에 감사함을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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