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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양선 Feb 10. 2024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표현해 보세요

난 이모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 생각해

    애정표현에 하수, 중수, 고수가 나뉜다면,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며 묵언수행 하는 자는 하수, '사랑해'라는 말 자체가 표현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중수, 열렬히 다방면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표현하는 나의 네 살 조카는 고수일 것이다. 


방법 1. 열일 제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기

    "사랑해"라는 말을 나는 꽤나 자주 하는 편이다. 가족에게도 하고, 가까운 친구에게도 자주 하고, 애인에게도 자주 한다. 사람의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우리는 상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는 존재이기에 상대가 내게 호감을 그다지 표현하지 않는다면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래서 덜 표현하고 경계한다.


    부끄럽지만 아빠가 조카에게 유난히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살면서 아빠에게 무뚝뚝한 면 밖에 없다고 믿고 살아왔던 것 같다. 아빠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기보단 다정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다정함에 좀 목말라 있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다정하게 놀아준다니? 아니 세상에? 이건 배신이야.라고 솔직히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빠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아빠. 왜 ㅇㅇ이한테는 다정한 거야?"


    별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원래 아빠는 본인이 생각했을 때 당연히 내가 대답을 알고 있어야 하는 영역이라고 느끼면 좀처럼 답을 잘 안 해준다. 그냥 혼자 입을 삐죽거리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 보이는 할아버지의 노란색 화물 트럭을 알아보고, 조카가 갑자기 같이 밖에서 놀다 말고 "할~아~버~지~"라고 열렬히 외치며 그 작은 발로 버선발로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아무리 얼음공주처럼 차가운 무뚝뚝한 아빠도 저리도 열렬한 환대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해 보니 조카는 매번 할아버지를 그렇게 반겨줬다. 우리가 반려동물 중 특히 강아지와 함께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중 하나는 열렬한 환대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강아지들의 열렬한 환대가 어떻게 가능할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이해타산적이지 않아서다. 아묻따 반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지난날을 진심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아빠를 살면서 조카만큼 반긴 적이 있었을까. '사랑해'라는 말을 아빠에게 건네본 적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아빠도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말을 건네는 일도 거리낌 없이 할 정도로 나는 표현 하나에는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물론 아예 표현을 안 하는 것보단 여전히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법 2. 상대의 존재 자체를 긍정해 주기

    '23년 1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가급적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 기운을 전할 까 하는 염려에 티 내지 않으며, 억지로 긍정을 외치며 지나던 때가 있었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순간이 더러 있었으나, 조카와 영상통화 하는 시간만큼은 늘 진심으로 내가 웃고 있었다. 어느 날 조카랑 영상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따로 통화를 하겠다며 언니(조카의 엄마)가 없는 곳으로 추정되는 으슥한 행거형 옷장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조용히 그녀가 속삭였다.


    난 이모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해



    그녀의 애정이 듬뿍 담긴 비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할 때 조카가 짓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정말 온전히 나만 본 미소이다. 그녀가 옷장 안에 꼭꼭 숨어서 정말 나랑만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듣는데, 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단 하나의 다짐이 남았다.


    '진짜 성공해야지. 무조건 성공해서 우리 조카 맛있는 거 많이 사줄 거야'


    인생을 나보다 한참 앞서가고 있는 인생 선배들의 도움이 내 고민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또 가끔은 이렇게 살아온 날로 치면 인생의 한참 후배가 내게 도움을 줄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저 시기 땐 나도 나를 제일 소중한 보물로 여겨주지 못했던 것 같다. 갑자기 그런 말을 조카가 그 순간 왜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왜 하필 나였을까'라는 내가 통제 불가한 상황과 원인에 대한 분석으로 인해 자꾸 절망으로 빠져들려 하는 내게 나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말은 큰 힘이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을 내뱉는 말. 그런 말을 사랑의 고수가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방법 3. 내가 아끼는 물건을 기꺼이 내어주기

    그리고 또 다른 영상 통화를 하는 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영상 통화를 처음 켰을 때부터 조카가 밀짚모자를 들고 있었다. 언니가 조카가 아끼는 모자라고 덧붙였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카가 화면에 나오는 내 머리에 본인이 아끼는 모자를 기꺼이 씌어주었다. 그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나도 내가 아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가.


방법 4.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담백해지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하나 둘 들어갈수록 느낀다. 그리고 담백해지기 어려운 만큼이나,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참 어려운 요즘이다. 혹시 상대의 마음은 나와 다르지 않을까, 다르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나, 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복잡해질 필요가 없다. 애정표현 고수의 행동양식은 다음과 같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해라. 그럼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모, 내 집에 자주 놀러 와


    정말 담백하지 않은가. 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어렸을 때부터 신축 아파트에서 산 기억이 거의 없는 나는 언니가 새로 들어간 아파트의 신축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과 엘리베이터를 집 안에서 잡아두는 등의 기능에 감탄했다.


    “언니 근데 언니집 진짜 좋다”

    “그렇지? 언니 집 좋지?”


    내 말을 들은 언니가 미소를 띠며 반문했다. 그런데 그 틈을 조카가 놓치지 않고 들어온 것이다.


    “이모, 내 집에 자주 놀러 와”

    “응, 이모 ㅇㅇ이 집 자주 놀러 올게”

    “쟤는 진짜 너를 좋아하는 거 같아. 쟤가 원래 누구한테 막 안기고 그러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엄마(조카의 할머니)도 매번 질투하고 그러지”


방법 5. 상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조카와 같은 사랑의 고수가 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자랑하기'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또다시 달려갈 용기를 주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다.


    회사에서 여느 때처럼 일하고 있던 어느 날의 오후,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조카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 이모를 그렸다며 자랑한 그림


    어린이집에서 나를 그려서 본인의 이모라며 선생님께 자랑하고, 또 그런 조카의 모습을 포착하여 어린이집 알림장 어플에 올려주신 선생님 덕분에 조카의 자랑 선행(?)이 나에게까지 알려졌다.



    아무리 사랑해도 각자의 삶이 있고, 나라는 객체는 오롯이 존재하는 삶. 그래서 서로에게 우선순위가 되어줄 것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본인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과는 다소 무관하게, 순수하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그런 순수한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면, 상대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 같다. 그러한 순수한 마음을 보고 무장해제 되지 않을 사람은 흔치 않다.




*Note: 브런치북 연재 요일을 기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변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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