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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양선 Jan 12. 2024

4살의 실패 대처 매뉴얼

다시는 물감으로 그리지 않을 거야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한 거구나'를 네 살 조카를 통해 느낀 적이 있다. 어떤 실패는 적당히 천연덕스럽게 넘길 줄도 알아야 하고, 어떤 실패는 충분히 절망하고 다짐해야 하는구나,라는 일련의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우선 나라는 사람의 마음은 자주 쪼그라든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작년 말쯤 친목 도모 목적의 워크숍이 있었는데, 돌아가면서 순서대로 1) 왜 이 회사에 합류했는가 2) 처음 합류하기로 결정할 때 예상한 바와 여태까지의 회사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일치하는 가 등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데, 나는 내 차례가 끝나고 주눅이 들었다. 다들 막힘없이 술술 잘 말하는 것 같은데 나만 횡설수설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빠서 인턴분들이 이 회사에서 얻어가야 하는 것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할 때가 많다”는 동료의 말에는 그런 생각조차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산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속상했다. 만약 나의 지인이 똑같은 상황으로 상심해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분명 나는 별 일 아니니 괘념치 말라며 상대를 다독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나의 친구에게 할 법한 다정한 말을 나에게 건네기란 쉽지 않다.


이렇듯 나는 자주 낙담하는 편인 것 같다. 하루에도 수차례 내가 내뱉은 단어에 대해 돌아보고, 그 단어가 내뱉어진 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본다. 그리고 더 나은 단어를 다시 골라내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새롭게 선별한 그 단어를 쓰겠노라’ 다짐한다. 이렇게 나는 매일 실패하는 나와 마주한다. 그리고 약간 상심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된다. 매 순간 마주치는 나의 과오 앞에서 나를 작게 하기보다는, 천연덕스러움을 장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카를 통해 배웠다.




어느 날 본가에 갔는데 조카와 나, 엄마(조카의 할머니) 이렇게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따로 사는 나를 위해 자주 각종 반찬, 과일 등의 음식을 챙겨주시곤 하는데 그날은 엄마의 목소리가 좀 다급하게 들렸다.


“얘, 너 온 김에 집 갈 때 사과 챙겨가! 아오리 사과”

“응? “

“아니, 글쎄. 네 조카 진짜 웃겨. 마트에 아까 나랑 같이 갔거든? 근데 초록색 사과가 신기하다고 먹어보고 싶다는 거야. 사서 먹어보더니 한 입 먹고 안 먹어”

  “두 개만 챙겨줘”


엄마의 한탄에 내가 웃으며 챙겨달라고 말했다. 조카가 엄마랑 마트에 단 둘이 장을 보러 가서 맛있어 보인다고 사달라고 했는데, 미식가의 조카의 입맛에 잘 안 맞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카가 잘 먹을거라 예상하고 산 엄마는 울상이고, 조카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러고 그 문제의 남아있는 사과를 먹어보는데, 내가 살면서 먹어본 사과 중 역대급으로 맛없는 사과였던 것 같다. 2개 챙겨달라고 말한 것을 무르고 싶을 정도였다.


“ㅇㅇ아. 사과 한 번 먹어봐”

“괜찮아~”


 조카는 배시시 웃으며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조카에게 핀잔을 줬다.


“야~ 네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산 거잖아~”

“아이참. 이모가 2개 가져갔잖아~”


맛 좋은 사과를 고르는데 실패했지만 조카는 핀잔을 주는 할머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이모가 두 개 가져갔으니 됐지 않냐 반문했다. 그 모습에 말문이 막히지만 귀여워서, 엄마와 내가 마주 보며 웃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내가 조금 잘못한 상황에도 가끔은 이런 뻔뻔함이 필요해’

 



또 다른 날은 조카의 체감상 굉장히 큰 실패에 깊이 좌절했던 날이다. 일을 하고 있는데 언니로부터 아래와 같은 카톡 메시지와 함께 사진이 왔다.


“오늘 ㅇㅇ이가 어린이날 그림대회 내려고 그린 그림인데.. 저 나비의 더듬이가 물감으로 지워져서 속상해서 안 그린다고 울었어 “


오른쪽 중간에 하늘색 물감으로 인해 지워져서 조카를 좌절하게 만든 문제의 나비 더듬이


 그날 퇴근길에 언니에게 전화를 해보니, 종이를 한 장 더 받아와 집에서 똑같은 것을 다시 그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다짐과 함께 말이다.


다시는 물감으로 칠하지 않을 거야


정말 대성통곡할 정도로 그녀를 슬프고 속상하게 한 그녀의 그림 인생 4년에 가장 큰 실패였지만, 이 일은 조카에게 교훈을 남겼다. '더듬이처럼 얇은 선은 물감에 쉽게 지워지는구나, 다음엔 물감 말고 다른 색칠도구를 사용해야지'라는 교훈 말이다. 인생의 큰 실패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그런 큰 실패는 충분히 절망하고 낙담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부정적인 감정들도 내 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야, 다시 새로운 다짐을 채워나갈 수 있다. 다시 손에 크레파스를 쥐고 나비를 그렸던 나의 조카처럼 말이다.


 다만, 이제 나는 기억하려 한다. 대부분의 실패들은 조카의 아오리 사과의 '에이~ 이모가 2개 가져갔잖아'와 같은 천연덕스러운 권법을 사용하며, 거기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미끄러지듯 흘려보낼 필요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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