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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양선 Nov 24. 2023

요청사항도 TPO에 맞게 하는 그녀

때론 당당하게, 때론 부드럽게.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아침운동 중이었다. 영상통화 소리가 울리길래 운동하다 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소리의 주인공은 나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오는 거의 유일한 사람. 바로 조카였다. 어떤 날은 이모가 보고 싶다며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필요하거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을 때 하기도 한다. 오늘은 후자였다.


    요는 주말에 그녀의 집에 놀러 올 때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는 것이었다. 이때가 겨울이라 감기로 몇 날며칠을 고생했던 시기였던 터라, 감기 걸려도 아이스크림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 당연히 먹을 수 있다는 씩씩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ㅇㅇ이가 좋아하는 1) 딸기맛 2) 요거트맛을 사간다고 하니, 3) 바닐라맛도 사다 달라며 그녀가 추가로 요청했다. 내가 웃으며 알겠다고 세 가지 맛을 사가겠노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언니(그녀의 엄마)가 옆에서 “엄마는 4) 그린티맛”이라며 거들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오케이, 그럼 네 가지 맛 사갈게”하니까 조카가 톤을 높여 말했다.


따로 갈라서 주세요 세 개는 나에게, 한 개는 엄마에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야무지다. 위풍당당하다. 어떤 단어가 정확한 표현 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청사항은 매우 명료했다. '나의 것'을 명확히 구분 지을 것을 요청하면서, 그 와중에 '엄마 것'도 살뜰히 챙긴다. 3+1의 덧셈 개념을 아직 이해 못하는 아이인데 이렇게나 명확히 구분 지어 말한다고? 의아하고, 신통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위풍당당한 그녀의 사례가 있다. 그 날은 아빠 환갑이라 다같이 참치회로 저녁을 먹고, 집에 가려던 때였다. 저녁을 다 먹고, 조카를 재우는 목적으로 잠시 식사 도중 유모차를 꺼냈다가 다시 차에 넣으려고 트렁크를 열었는데 자리가 모자랐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형부가 나를 도와주려고 차에 내려서 돕는데, 조카가 뒷자석에서 트렁크를 바라보더니 크게 외쳤다. 


    "내 킥보드는 조금만 왼쪽이요!"


    그녀의 귀여운 지시. 킥보드를 조금 왼쪽으로 넣으면 유모차가 들어갈 것 같았나보다. 


    어느 겨울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는 없었지만, 엄마랑 언니랑 조카랑 셋이 신발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2켤레의 신발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2개의 신발을 놓고 각 신발별로 신어야 하는 이유를 부여했다고 한다. 


    "저거는 따뜻한 봄이 오면 신을래"

 

    그러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니까, 하나를 고르더니 조카가 말했다고 한다.


    "딱 좋아. 이거 사줘"


    귀엽고 당당한 그녀의 사례에 대해 잔잔한 미소가 나오는 얘기를 하다가 조금은 진지한 얘기를 해보자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요청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선 훨씬 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나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 말고 다 큰 어른이 된 후에 괜스레 원하는 것을 명확히 요청하는 게 쑥스럽거나 상대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에,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당연히 상대는 독심술을 쓰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상대도 답답하고 나 또한 답답한 채로 몇 번의 핑퐁이 더 지속되거나, 아니면 긴 시간을 할애한 노력이 무의미하게 대화가 짜증으로 종료되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 것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었다는 전제 하에 상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수락하거나 거절하거나.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의 output은 네 말을 못 알아듣겠으니 들어줄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수락될 확률이 0에 수렴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결과 값이라면,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은 50 대 50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라는 배가 순항할 때 삶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거창하지만 원하는 것을 명확히 말을 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나는 조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대부분의 상황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되는 시간 낭비도 덜 하고, 관계에서 오는 답답함을 덜 느끼고, 결과적으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조카와 겪었던 일 중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나의 생일날 조카가 '유니콘 그림'을 선물로 그려줬다. 2박 3일을 함께 천안에서 지낸 후 친언니가 나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 날이었다. 서울 자취방에 가져가기 위해 가방에 넣어놨는데, 가방 사이로 빼꼼히 '유니콘 그림'이 뒷자석에서 앉아있던 조카의 눈에 띤 모양이다. 처음에 나는 순전히 장난으로 조카를 놀릴 생각에 말했다.


    "어, ㅇㅇ아. 그거 ㅇㅇ이가 이모 생일 선물로 줘서 이모 가져가려고 챙겨 놓은건데, 다시 뺏어가는거야~?"


    그러자 조카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유니콘 그림' 종이를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차 싶었다. 아이가 원하면 당연히 돌려줄 생각이었다.


    "ㅇㅇ아. 이모가 장난친거야. 다시 가져가도 돼. 응?"

    

    조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큰 일이었다. 나 진짜 유니콘 그림 필요 없는데. 집에 ㅇㅇ이가 그려준 그림이 (유니콘은 아니었지만) 족히 8장은 더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카가 지금 원하는데 이모의 마음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게 속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배경이 고작 나의 장난에서 시작되었다니. 조카는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거 근데 약간 종이가 찢어진 것 같은데" 


    나는 처음에 무슨 의도로 저 말을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언니가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어, 그럼 그거 약간 찢어진 거 집 가서 붙이고 다음에 이모 줄까?" 


    끄덕끄덕. 휴. 천만다행이었다. 조카는 다행히 다시 '유니콘 그림'을 집으로 가져가기를 선택했다. 내가 '유니콘 그림'과 함께 돌아갔다면, 서울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신경이 쓰일 뻔했다. 그녀의 최애는 꽤 자주 바뀌지만, 요새 최애는 유니콘이라고 들었다. 나는 최애를 그려 기꺼이 이모에게 선물을 해주려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 우회적으로라도 자신이 '유니콘 그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조카가 표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매번 베스킨아이스크림처럼 당당하게 요구할 수는 없을 수 있다. 옷을 TPO에 맞게 입는 것처럼, 요청사항 또한 TPO에 맞게 어떤 때는 당당하고 단호하고, 어떤 때는 부드럽고 우회적으로 요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배워가는 과정이겠거니 싶다. 부디 그녀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와 바람을 전할 줄 아는 어린이를 지나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갔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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