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 다가오면, 음악차트의 상위권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노래가 하나 있다. “봄바람이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바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다. 기상청보다 봄을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이 음악이 차트에 올라가면 어느새 벚꽃이 만개되어있다. 보통 벚꽃 구경하면 어디가 생각나는가? 나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 공원과 가로수길이었다. 벚꽃의 명소는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서울의 경우 대부분 벚꽃명소 하면 여의도 공원을 가장 많이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벚꽃이 피면 여의도 공원을 생각했다. 높은 빌딩 사이 분홍색 벚꽃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위로는 한강이 굽이굽이 펼쳐져있고 자연을 즐기는 게 조금 물릴 때쯤 아래로 내려가면 영등포, 신도림이 위치해 있다. 타임스퀘어, 테크노마트 등 다양한 쇼핑문화를 즐기면서 자연과 도시의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도심 속의 자연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벚꽃축제도 하니 여의도는 벚꽃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명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벚꽃명소에 여의도 공원이 떠오른다면 아직 제주도민이 덜 되었다는 반증이다. 우리에게 벚꽃명소는 어디인가? `여의도?`, `가로수길?` 아니다. `전농로`와 `제주대학교`이다. 벚꽃명소라는 단어를 듣고 전농로와 제주대학교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데?”라는 긴 문장을 “무사?” 이 두 글자로 끝내버릴 수 있다. 그만큼 벚꽃 하면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농로와 제주대학교를 떠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봄이 찾아오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제주 토박이 직원이 주말에 벚꽃을 보러 가자 해서 같이 갔었다. 장소는 전농로였다. 처음에 전농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통 벚꽃 하면 공원을 가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 머릿속에는 여의도공원이 박혀 있었으니까. 길가를 가자는 말에 나는 조금 반감을 가졌다. `전농로가 대체 어디야?`라는 생각으로 나는 전농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전농로(典農路)는 당시 인근에 있던 농업고등학교 많은 인재를 배출한 실적을 기려 이름을 명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농업고등학교는 이전했고 이름의 유래보다는 심어져 있는 벚꽃나무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벚꽃나무에 벚꽃이 만개한 전농로는 어느 곳보다 예뻤다. 시작점에서 끝까지 사진도 찍고 걷다 보면 편도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전농로는 특정 위치가 아닌 `거리`를 칭하기 때문에 시작점과 끝점을 찾기 힘들 수 있다. 전농로 벚꽃거리의 시작점은 대한적십자사제주도지사(제주시 전농로 7)의 길 건너편이다. 시작점에 가면 `전농로 왕벚꽃거리` 는 가판대를 볼 수 있다. 나머지 가는 길은 거리를 따라 심어진 벚꽃나무와 내린 분홍빛을 띠 있는 벚꽃 잎들이 안내해 줄 것이다. 도착지는 벚꽃나무가 마지막으로 심어져 있는 LH제주지역본부(제주시 전농로 100)이다.
전농로가 어떤 느낌인지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전농로 인근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을 더해보겠다. 전농로에 노포 설렁탕집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노포의 가게에서 진한 국물의 설렁탕과 아삭한 깍두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솔솔 피로가 몰려온다. 이때 믹스커피를 들고 전농로를 걷는다. 몰려오는 피로와 커피의 카페인이 어울려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리고 분홍분홍 한 벚꽃길을 걷다 떨어지는 꽃비들을 보면 마치 삼국지의 영웅호걸이 된 느낌이다.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의 의리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전농로가 제주도민이 손꼽는 벚꽃명소이긴 하지만 나는 회사가 전농로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주말에 갈 수밖에 없다. 주말에 가게 되면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하여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리고 전농로는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불편한 점 때문에 나는 제주대학교로 벚꽃구경을 간다.
사진 1. 제주대학교정문 벚꽃거리(대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과잠을 입고 데이트했던 첫사랑이 생각난다.)
사진 2. 전농로왕벚꽃거리 시작점(들어가는 순간 분홍빛 꽃비에 마음이 치유된다.)
제주대학교도 벚꽃명소로 유명하기 때문에 주말에 사람이 많다. 제주대학교 정문에서부터 벚꽃길이 길게 이루어져 있는데 차량이 상당히 많다. 아라동에서 제주대학교를 가기 위해 쭉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차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정문 벚꽃거리를 가기 위해서이다. 차량은 `허`나 `하`로 시작하는 렌터카는 물론 다양한 번호판의 차량이 줄 서있다. 월요일도 쉬고 화요일도 쉬고 여행을 왔다면, 사람이 없는 주중에 갈 수 있겠지만 직장생활에서의 휴식은 토요일과 일요일 2일뿐이다. 그래도 이제 나름 제주도민의 궁색을 갖추어 도민만이 아는 방법으로 벚꽃을 즐긴다.
모두가 정문으로 갈 때 나는 제주대학교 후문으로 간다. 그리고 제주대에 주차를 한다. 제주대는 주말에 주차가 무료다. 그리고 대학생의 느낌으로 저렴한 커피 한잔을 들고 정문의 벚꽃길로 발걸음을 돌린다. 특히 거리 중간에 있는 이삭토스트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대학가이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도 많아서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커피를 들고 제주대학교 정문 벚꽃거리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그리고 줄지어 있는 차를 보며 `나는 완전 빨리 들어왔지롱~`하는 묘한 승리감은 즐거움을 더해준다. 차량을 이용하여 나갈 때는 들어온 후문 길이 아닌 벚꽃이 만개되어있는 정문길로 나간다. 차량들이 벚꽃거리로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서있지만 나갈 때는 줄이 없다. 집으로 나가면서 차량 앞 유리에 흘러내리는 꽃비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져 있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바다가 먼저 연상되어, `제주도`와 `벚꽃` 이 두 단어는 무언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도 벚꽃을 볼 장소가 많다. 앞에서 언급했던 2곳 외에도 제주도에 숨은 벚꽃명소가 많다. 봄날, 제주도에 여행 온다면 나만의 벚꽃명소를 찾아보는 것도 큰 재미일 것이다. 서울에서도 꽃놀이를 즐길 수 있지만, 제주의 벚꽃놀이가 서울과는 다른 점은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고층빌딩이 과도하게 시야를 막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은 고개를 돌리면 고층빌딩이지만 여기는 고개를 돌리면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에서도 일로 지친, 각박한 일상 중 나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커피 한잔 손에 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