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생-61년생-94년생 대통합을 이루다
나는 트로트를 좋아한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트로트를 들었고 매주 월요일 10시는 가요무대, 일요일 12시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자주 들으니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 좋아졌다. 나는 트로트가 가진 정서, 한글 가사가 주는 울림이 참 좋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트로트가 잊혀졌다. 본가에 내려갈 때 가끔 듣는 정도가 되었다. 매주 보던 전국노래자랑도 오랜만에 보려니 '이게 뭐가 재밌지' 하는 생각이 들며 다른 예능을 보고 싶었다.
부모님과 나를 다시 뭉치게 만든 건 미스터트롯이었다. 설 명절에 함께 보다가 유소년부 홍잠언, 정동원에 푹 빠져버린 나는 트로트 덕질의 기질을 되찾았다. 3시간에 가까운 본방도 사수하고 재방도 보고 클립 영상도 찾아봤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 다 좋아했지만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가 소위 '듣는 맛'이 났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심사가 생겨서 기뻤다. 무한도전도, 1박2일도, 58년생인 아빠와 61년생인 엄마와 94년생인 내가 다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지 못했는데 그걸 미스터트롯이 해낸 것이다!
최근 미스트롯2 시즌이 시작되고 우리는 다시 뭉쳤다. 매주 전화해서 이번 주 미스트롯 방송은 챙겨봤는지 물어보고, 재방 시간 찾아서 알려주고, 카톡으로 클립 영상을 보내준다. 그러면 또 내가 보낸 카톡 봤는지, 무대 어땠는지, 누가 제일 좋은지 물어본다.
트로트 붐이 일어나면서 너도나도 트로트 프로그램을 복제하듯 찍어내면서 아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로서, 트로트를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트로트가 다시 부흥하고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지금이 정말 좋다. 부모님과 대화거리가 한 개 더 늘어났다는 게, 먼저 떠드는 타입이 아닌 아빠마저도 술술 떠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자꾸 좋다는 표현만 하는데 진심으로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미스트롯2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된다. 나는 누가 우승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10살 국악신동 김태연이 제일 좋다고 한다. 아빠는 제주댁 양지은이 제일 잘한다고 한다. 홍지윤, 별사랑, 김다현, 김의영, 은가은까지 다 좋다!
과연 이번엔 누가 우승할까? 누가 우승하든 좋은 노래들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 아빠가 피곤함도 잊고 즐겁게 볼 테니까. 내일도 나는 몰래 트로트를 들으며 출근길에 오를 것이다. 나만의 숨듣명은 '트로트'다.
마지막 문장은 미스트롯2 참가자 주미가 부른 노래이자 원곡자 김영철의 노래 제목을 빌려본다.
트로트 좋아하면 '안되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