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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Feb 19. 2021

부모의 울타리, 아이의 기다림

트럭 속 아이, 고무대야 속 나

출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용달 트럭 안 조수석에 앉아 있다. 시선을 늘 아래로 향해 있다. 아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


아이가 탄 트럭이 주차된 곳은 작은 두부 가게 이다.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판두부를 만들어 도매 납품을 하는 소공장인 듯 보인다. 두부를 삶고 두부판을 씻어낸 물은 가게 밖으로 흘러나오고, 강추위가 몰아치는 날엔 금세 얼어붙곤 한다.


아이의 보호자를 알지는 못한다. 트럭에 두부판을 싣는 두어 명의 아저씨 중 한 명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라 하기엔 연세가 있어 보이고 할아버지라 하기엔 젊어 보여서 관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아침 8시 40분에서 55분 사이에 그 트럭을 지나칠 때마다 아이는 차 안에 홀로 있다. 날도 춥고 분주히 차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이라 밖에서 뛰어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보호자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아이를 보며 어릴  나를 떠올린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울타리이자 보호막이 트럭이었다면 나에게는 빨간 고무대야였다.


어느 날, 엄마는 텃밭에 있는 빨간 고무대야를 보고 " 어렸을  대야에 앉혀두고 엄마 아빠 일한  억나니" 하며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고작 서너 살일 적에 집 앞에 돼지 축사를 지었다. 언니 셋은 모두 국민학교에 가고 아빠는 공사일에, 엄마는 아빠와 인부들 먹일 밥을 짓기 바빴다.


어린애를 홀로 집안에 둘 수 없었던 부모님이 고른 건 고무대야였다. 잘 놀고 있는지 쉽게 지켜볼 수 있고 내가 함부로 빠져나가지도 못하니 안전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고무대야만 한 게 없었던 것이다.


"째깐한 기가 햇볕에 시꺼멓게 타고, 그래도 혼자 얌전히 놀고 있었제."


그때를 회상하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감정들이 느껴진다. 어쩌면 트럭에 아이를 태우는 아저씨의 표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엄마와 닮지 않았을까.


부모는 아이의 울타리다. 아이는 절대로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트럭이든 고무대야든 그 안에서 부모를 기다릴 뿐이다.


부모가 해야  일은 돌아오는 것뿐이다. 반드시, 아이에게로.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고,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도 미소를 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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