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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Mar 04. 2021

어느 날 언니가 우리도 줌 회의 좀 해보자고 말했다

딸 부잣집 네 자매의 온택트 만남

우리 가족은 올해 큰 기념일이 있다. 바로 엄마의 환갑이다.


3년 전 아빠 환갑 때는 네 자매끼리 곗돈을 모아가며 준비했었다. 여섯 식구에 형부들과 조카들까지, 11명의 대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떠났고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돌아왔다. 5세 미만 아이들과의 여행은 매우 힘들다는 뼈저린 교훈과 함께.


그새 식구는 더 늘었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가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 부모님에겐 손주가, 나에겐 조카가 둘이나 더 생겼다. 집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건 그로 하여금 온 가족이 시간을 맞춰 한 데 모이기 어렵다는 것과 모여서 무엇을 하든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말썽을 부리니 큰일이다. 그렇다고 엄마의 환갑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이래저래 난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


어느 날, 큰언니가 우리도 줌 회의 좀 해보자고 말했다. 나는 내가 주최를 할 테니 육아를 마치고 모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 집 4자매는 셋째 언니 결혼식이 있었던 2019년 12월 이후 1년 3개월 만에 다시 뭉쳤다. 시간은 토요일 저녁 언니들이 모두 '육퇴'를 하고 난 후인 10시, 오프라인이 아닌 줌에서.


"줌이 뭐야?"라고 물을 정도로 줌이 낯선 언니들은 접속하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컴퓨터 학원에서 타자연습하면 이름 좀 날렸던 인물들인데, 비디오 켜랴 스피커 연결하랴 가로화면으로 돌리고 휴대폰 각도를 조절하기까지 언니들은 난데없는 신문물 앞에서 영락없이 서툴렀다.


그래도 우리는 금세 적응했다. 첫째 언니는 얼짱 각도를 욕심냈고, 둘째 언니는 여유로운 치맥을 즐겼고, 셋째 언니는 잠든 아기가 깰까 싶어 ASMR 톤으로 말했다.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서 무얼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회의했다.


과거의 우리는 넷이서 만든 카톡방에서만 떠들 뿐, 전화나 영상통화를 즐기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니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영상통화를 종종 하게 됐다. 그마저도 자매님 얼굴보다는 조카 얼굴 보는 게 전부였는데, 아가들 없이 형부들도 없이 네 자매가 동시에 얼굴을 마주하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 그리고 참 빨라졌다. 나라도 줌 사용법을 알아서 다행이었고, 줌에서라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감사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여전히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줌 회의에서 세운 모든 계획은 아직 꿈에 불과하다. 리마인드 웨딩, 가족여행 등 행여나 우리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만 있다면 기쁠 것 같다.


만약 올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없다면, 엄마 아빠에게 줌 사용법을 가르쳐줘 봐야겠다. 마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들(한석규)이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녹화법을 가르쳐주듯이, 대신 화내지 않고 천천히.


서울, 하남, 용인, 천안, 영광에 사는 우리 가족이 한데 모일  있는 자리는 어디가 될까. 촬영 스튜디오일까, 여행지일까, 아니면 줌일까. 어디가 되든 모일 수만 있다면 무척 설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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