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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b Mar 08. 2024

도피유학 가려던 노처녀, 비혼주의 남자를 만나다.(2)

왜 결혼을 못하냐고 물으신다면

도피유학 가려던 노처녀, 비혼주의 남자를 만나다.(1)

어느새 우리 부모님께 인사드리기로 한 날.


부모님께 중요한 결정을 떠넘기고 싶어서, 부모님의 반응과 의견을 듣고 이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할지 생각해 보자 라는 의도였는데, 아침부터 세차를 하고 새 옷을 차려입고 우리 부모님의 선물을 준비하는 이 남자를 보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동이 밀려온다.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고 한결같이 자상하게 대해주는 그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식사 자리에 앉으니 온화한 표정의 엄마와는 다르게 (그렇게 결혼하라고 압박을 하셨으면서도) 내 딸을 데려간다는 놈이 어떤 놈이냐 하는 표정으로 선을 그으며 아빠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아빠: "자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네, 아직 정식으로 교제하는 것은 아니라기에 집으로 부르긴 그렇고 식당에서 보자고 했네."

그: "네, 아버님. 저는 큰 따님의 남자친구 ㅇㅇㅇ라고 합니다."

아빠: "음.. 다른 건 둘이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내 딸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들었는데 나는 그게 마음에 걸리네."

그: "아버님, 저는 이 사람과 만나는 동안 누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족 일동: "... "



이 남자의 대답을 듣고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했고, 그 이후의 대화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 혼자 잘난 줄 아는 철없는 큰딸을 인정하며 우리 가족도 그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듯했다. 그동안 마음에 걸리는 건 연하라는 나이 한 가지였다.(아니, 그 핑계로 결혼을 거부하며 목적 없는 연애를 하고 싶었나 보다) 나이가 어리니 결혼 준비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나보다 생각도 어릴 거라고 여겨왔는데 오늘 보니 그건 내 편견이고 큰 착각이었다.


직접 살아보기 전까지 결혼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혼하기에 아직 불안하다'는 그의 지난 표현이 '결혼 싫고 도피유학 갈 거야!'라는 내 결심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 끝에 나온 현실적인 답변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의 부모님께서도 나를 보고 싶어 하셨고 부모님을 뵙고 나니 나도 확신이 섰다. 자상한 부모님 밑에서 바르게 자란 이 남자가 다시 보였고, 결혼생각이 없다던 이 남자는 어느새 내 남편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남편은 완전한 형태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남자다.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누린 것은 아니지만 그에겐 자라면서 한 번도 부정당해본 적 없는 ‘밝음’ 이 있다. 그래서인지 뿌리가 깊게 뻗은 나무처럼 안정적이고 우월감이나 열등감, 타인의 시선 같은 것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식사를 하는 것에 어색함이나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영어로 말하자면 그냥 ‘just being himself’인 것이다.   -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마치 내 남편을 설명한 듯한 이 구절을 읽고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옆에서 항상 편안했던 이유를.


첫인상은 그냥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유쾌한 청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아갈수록 생각이 깊고 바른 사람이었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정도 많아서 주변인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남몰래 배려했다. 연인이라고 딱히 강요하는 것도 없이 보고 싶을 때 만나고 떨어져 있을 때는 또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나라는 사람은 '내 선택'과 '자유'라는 가치가 중요해서 누가 끌고 가거나 간섭하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데, 이 사람은 항상 내 판단을 기다려줬고 내가 결정하고 나면 그걸 도와줄 방법을 찾아줬다.


그리고 나에겐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미국병(이전에 만났던 남자들이 다 미국으로 떠났다.)이 있었는데, 그는 어릴 때 가족이 미국에서 몇 년간 살다가 왔다고 했다. 이상한 논리지만 그는 이미 미국엘 다녀왔으니 떠날 일은 없겠구나 이상한 안심이 들었다.


이런 그가 가진 한 가지 걸림돌이라 하면 연하남(이라서 부모님이 반대하실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누나라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는 한 문장으로 나는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까지 한방에 KO 시켜버린 그였다.







나는 왜 그에게 끌렸을까. 왜 그와 결혼하게 되었을까. 나 자신도 궁금했다. 부부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먼저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의 개인적인 연애이야기가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거다.


Just be yourself.  그냥 너답게, 네 모습 그대로 존재하라고.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사랑하는 게 먼저라는 것.


결혼하려고 그렇게 난리일 때는 찾지 못했던 내 사람을, 결혼생각을 놓고(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현재를 지내다 보니 만나게 되었다. 결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 일대의 대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나는 내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남자와 부부가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취향과 시간을 존중하며 지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결혼 7년 차,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맞춰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내고 있는 같다.



결혼 못한 노처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화부터는 '따로 또 같이'사는 부부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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