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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b Jul 26. 2022

결혼하면 안 되는 성격의 남자와 결혼생활은 어떨까

개인주의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부부의 대화, 오타는 못본 척 해주세요)




나 같지 않아?



인스타그램 유머글에 [결혼하면 안 되는 성격 특징]이라는 글을 보고 남편이 본인 이야기 같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나열된 성격 특징들을  쭉 읽어 보니 '무조건 더치페이 혹은 내가 빚졌다 생각되면 전부 되갚음' 이 부분은 남편의 성향이 확실하다. '내 사람이 아닌 타인에겐 국물도 없음' 은 나와 남편 둘 다 어느 정도 해당되는 부분이고, '카톡이나 연락이 귀찮음' 이건 남편 말고 내 얘기인데?


그 밖에 '눈치가 빠르며 타인의 생각을 잘 읽음', '자존심이 강하고 매우 현실적임', '생각이 지나치게 많음', '모든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두는데 선을 넘어오면 굉장히 싫어함', '주관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음(이해와 수용을 잘함)' 등 대부분의 문장이 남편과 나를 설명하는 말이 맞다.



이 같은 성격유형의 사람은 이성을 만나 시작은 매우 순조롭지만 오래 만나기에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스타일로 대부분이 개인주의 성향의 소유자라고 한다. 타인의 삶에는 관심이 적으며 자신만을 생각하고, 비교적 정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고 대개 이성적인 편이라고 부연 설명이 되어있는데, 나는 아닌 척 답했지만 나에게도 많은 부분이 해당되는 말이다.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과제였던 결혼이라는걸 드디어 해냈는데 내가 고른 남자도 나도 결혼하면 안되는 성격이라고??


그렇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남편이 순도 100%의 개인주의자라면 나는 세미 개인주의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주의’라는 용어는 1840년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토크빌의 저서에서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만 관심을 갖는 인간의 온건한 이기주의’라고 묘사하며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가 출현하고 프랑스혁명이 발생한 후부터이며, 근대 유럽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상과 태도라고 설명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교양과목 “동서양 사상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 동양은 농경문의 발달로 공동체주의,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하였고 서양은 근대화의 영향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기억이 있다.



그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인들은 결혼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들도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는데?






설명된 성격 특징들을 보고 있자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연애기간이 길지 않아 남편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겪었던 일들이라 그 당시 욱한 감정이 함께 올라오기도 한다.



첫 번째는 생일선물 사건이다.

우리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자 장기여행인 신혼여행기간에 내 생일이 있었다. 신혼여행 기간에 생일이라니! 로맨틱한 이벤트를 상상하며 저녁까지 기다렸는데 이 남자 저녁 레스토랑 이후 라운지 바에 가서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다였다. 정말 이게 다라고?? 결국 서운함에 울어버리고 만 나는 신랑에게 내 생일인데 준비한 게 없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생일을 크게 챙겨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서운해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빚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생일선물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선물을 많이 받으면 좋은 거 아냐?라고 물어보면 받은 만큼 본인도 다 챙기고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부담이라고 한다. 나란 여자는 생일이 너무 중요해서 결혼 전에는 연인과는 물론이고 친구들과도 한 달 내내 생일 파티하며 서로 축하를 주고받는 일이 당연했는데 말이다. (복수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그 해 신랑의 생일날 나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 낳고 주변 사람들 챙기는 일이 녹록지 않다 보니 이제는 남편의 의견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두 번째는 이런 생각을 친구나 지인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적용한다는 점이었다.

가족 간에는 모든 걸 공유해야 하고 가족 행사라면 1순위로 참석하는 것이 당연 한 집안에서 살아온 나와는 다르게, 시댁에서는 개인의 일정을 존중해주셨고 남편조차도 며느리가 되었다고 나에게 새롭게 기대하는 역할이 별로 없었다. 시부모님도 같은 성향이셔서 그런지 명절에도 시댁에 가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개인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나는 명절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우리 부부의 일은 우리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니 터치받고 눈치 보고 할 일도 없다. (내가 얻은 자유의 크기 만큼 책임의 크기가 큰 것도 사실이다.)


잔소리 듣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친정엄마께서도 너한테 딱 맞는 시댁을 잘 골라서 시집갔다고 하신다. 가족 간의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친정 부모님 입장에서는 개인 일정이 많은 우리 부부를 서운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가족행사를 이유로 갈등이 생기는 것보다는 부부가 큰 문제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가는 편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내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 국물도 없다”는  누군가 외부인이 남편 본인이나 우리 가족에게 피해를 줄 때 너무도 강력하게 대응을 해서 남들에게 매정하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갈등이 생기는 것을 싫어해 뭐든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나를 대신해 민원 해결사 역할을 해주는 일이 고맙기도 하다. 분명 타인에게는 국물도 없음인데 나는 이미 그의 가족이니 '내 사람' 영역의 한 사람으로서는 이제 그다지 불만이 없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누구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서로 이해하고 닮아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직 결혼은 한 번밖에 못해봐서 다른 성향의 남자와 사는 것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개인주의자인 남편과 5년간 결혼생활을 해본 결과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운 점이 많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중략)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이고 누구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누구나 자기의 바운더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을 집단 속의 역할에 가두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주의자 성향의 사람은 자기애가 우선시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배운 점이 많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엄마라는 타이틀이 이렇게 힘든 역할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힘든 상황일수록 내가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부모라는 역할은 희생적인 내 부모님의 모습만 보고 자랐기에, 나는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육아를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휴식시간을 가졌고,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찾아서 하곤 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됐는데도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싶기도 했지만,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를 도우려면 우선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것처럼 힘든 육아를 버티려면 내가 나를 돌봐야 하는데 그 방법을 남편을 통해 배웠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엄마라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자를 권하는 책의 구절을 인용하며, 나 역시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개인주의자가 되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 설령 미래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않더라도, 삶의 척도를 자신에게서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개인이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유로운 사회로 나가는 길이다.

- 개인주의자를 권하다,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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