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혼집은 남편이 나고 자란 동네에 있었다.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빨랐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같은 동네에 사는 미혼 친구들이 많았고, 언제든 원할 때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기야, 나 동네에서 한잔하고 와도 돼?"
"응, 다녀와요"
"자기야, ㅇㅇ이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네?"
"응, 다녀와요"
누가 보면 내가 부처인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 또한 사람을 좋아해서 결혼 초엔 남편이 친구들과의 온갖 약속자리에 다 나를 데리고 다녔고, 그 결과 남편의 모든 친구들과 편하게 지내기도 한다. 어떤 친구들은 오히려 나랑 더 친해져서 남편이 서운해하기도 할 정도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같지만 남편은 어떤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소수가 있는 자리와 술자리는 1차만. 짧은 게 좋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 남편이 친구를 만나러 가도 그다지 외롭지가 않다. 사람 많은 술자리보다는 오히려 혼자 노는 게 더 좋은 게 나다.
하지만 우리도 처음부터 이렇게 평온했던 것은 아니다. 연애할 때는 각자의 집에서 생활을 했고 나는 일찍 자는 습관이 있어서 그가 언제 귀가하는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서 결혼까지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신경이 쓰여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하루는 이 남자가 12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길래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연락도 없이 새벽 2시에 상영하는 심야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다 끝나고 집에 왔는데도 남편은 내가 사라진 줄 모르고 있었다. 연락이 없으니 내가 잠든 줄 알고 그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럴 거면 혼자 살지 그랬어!!!
결국 나는 폭발했고, 위기를 직감한 그는 그 후로 12시 전에는 들어오려고 노력하고, 늦어질 때는 수시로 상황을 보고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주말이면 남편은 늦잠을 자고 나는 일찍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브런치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주말오전을 즐기고 오후부터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혼자 살 때와 비슷했고 익숙한 생활방식이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전혀 불만도 없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그의 친구들이었다. 결혼기념일 다음날 친구들에게 주말 낚시여행을 가자고 하는 남편을 보고 남편의 친구들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그 말을 전해 들은 나의 반응은 남편의 예상과 같았다.
"아니, 그게 왜 안 되는 거지? 뭐가 어때서??"
결혼기념일 행사는 당일에 식사로 마칠 예정이고 그다음 날 여행 간다는 게 무슨 문제인거지?
아이가 생긴 이후에도 별로 변화는 없었다. (물론 2~3년간 폭풍 육아의 시기를 거쳤지만) 다행히 아이는 아빠처럼 아침잠이 많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나는 둘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일어나 산책도 다녀오고 내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게 나의 힐링타임이었다. 남편은늦잠과 친구들을좋아하고(외출 전후엔 청소를 싹 한다) 나는 아이랑(집안일 안 하고) 뒹굴거리는 게 좋다.
집안일도 요리도 싫어하는 나는 남편이 회식을 하거나 친구와 약속이 있을 때면 아이와 외식을 하고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온다. 나는 집안일보다 일과 육아가 편해서 아이와 둘이 외식하는 건 데이트하는 느낌이다.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오면 요리를 안 해도 되고 집도 더러워지지 않으니 1석2조인 셈이다. 회식이나 약속이 많은 남편이지만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청소를 싹 해놓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우리의 식사를 준비해 주는 그 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남편은 친구들과의 자유시간을 원하고 나는 집안일을 안 할 자유를 원하며 서로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며 지내고 있다.
개인주의자와 사는 것은 외롭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도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원할 때가 있다. 혼자 놀기를 끝내고 누군가 대화하고 싶을 때에도 나 혼자라면 외롭다. 늘 누군가와 함께이기를 원하는 남편도 내가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아이와 친정으로 떠날 때면 외롭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자가 아닌 이타심이 많은 사람과 같이 살면 그렇지 않을까? 아니, 누구랑 살아도 그럴 것이다. 기대와는 다르게 남에게 잘해주다가 나를 외롭게 할지도 모른다. 부부라고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는데, 함께인 것이 익숙하면 잠시 혼자 있을 때 더 외로울 수도 있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까? 그것도 답은 아니다. 결혼을 안 한다고 해도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