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최근 결혼문화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외동으로 자라거나 형제가 많아야 1명인데 그중 남매인 경우는 또 드물어서 실생활에서 다른 성별과 살아가는 경험이 적으니 남녀가 서로에 대한 환상이 크기도 하고 잘못된 경우 이성에 대한 혐오감정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느끼지 못해도 실제로 결혼해서 살아보면 남녀가 서로 생활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겪어본 적도 없으니 서로를 이해하는 게 어렵고, 예전처럼 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남편은 누나가 있어서 여자사람의 일상생활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것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상대를 고민할 때 엄마가 남자형제보다는 누나 있는 남자가 훨씬 낫다며 현재의 남편에게 한 표를 던지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오늘은 나의 시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개인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의 8할은 시부모님과 시누에게 있다고 본다. 그중 내가 너무도 애정하는 우리 시누. 시누는 나랑 mbti가 같다. 둘 다 돌아이에 개썅마이웨이로 불리는 entp. 기본 성향이 비슷해서 서로를 이해하기도 쉬운데 시누는 나보다 뭐든(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더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도 나름 시골에서는 공부 좀 했는데 우리 시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오셨다. 나도 말발이 좀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시누 앞에선 온 가족이 말싸움으로 이길 수가 없다. 지식도 논리도 말발도 넘사벽(방이 더러운 것까지 비슷하다)
이런 누나 밑에서 트레이닝되어서 그런지 남편도 말싸움으로는 절대 지지 않는다. 신혼 초 남편과의 말싸움을 몇 번 경험해 본 결과 이 남자는 싸움으로 이어지면 본인만의 논리로 어떻게든 이기려고 해서 결국 나에겐 상처만 남는다는 걸 깨닫고 말싸움으로 이기기는 포기한 지 오래다.(포기하면 편해) 남편과 말싸움이 시작될 것 같으면 나는 "아~ 그렇구나, 미안!"이라 답하고 그럼 대화는 어이없게 종료된다. 남편이 남들에게 말할 때 이걸 '와이프의 태극권'이라고 부른다는데 청중은 주로 남편과의 말싸움에서 상처받은 그의 친구들일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로의 감정이 정리된 후에 전하는 게 나의 스킬인데, 평온한 상황에서는 내 의견을 귀담아듣고 많은 부분 수용해 주는데 싸움 상황에서는 같은 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인 결과다. 결과적으로 어떤 면에선 우리의 부부싸움이 길어지지 않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신 것이다.
여성에 대한 권리의식도 훨씬 높으셔서 남편에게 '집안일은힘센 남자가 하는 거야'라고 강조하시고 시부모님께서 혹여라도 며느리에게 서운한 이야기를 할까 봐 매번 주의를 주신다.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이 관리 안된 모습을 보일 때면
네가 배 나오고 대머리 되면 니 와이프가 연하랑 사는 이유가 뭐니! 관리 좀 해!!
라고 말씀하셔서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도 능력자 셔서 가족식사 때면 좋은 식당에 데려가 주시고 매번 아이 선물도 챙겨주시면서 우리 부부에겐 부담을 안 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 감사하고 나도 저런 시누가 되어야겠다고 배운다. 이쯤 되면 너무 예찬인가 싶지만 이것이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시누를 키워내신 시부모님께서는 (결혼생각 없다던)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는 발표를 듣자마자 전부터 꿈꾸던 전원주택으로 도망을.. 아니 이사를 가셨다. 심지어 우리 신혼집을 구하기도 전에 집을 옮기셔서 남편은 몇 주간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시부모님께서도 자식에게 기대거나 바라는 것 없이 두 분이서 (가끔은 투닥대지만) 전원생활을 즐기며 지내고 계신다. 시부모님과 함께 가족여행을 갈 때도 여행지에 도착하면 두 분이서 산책을 가시고 관광지를 다녀오시기도 해서 효도관광에 익숙한 나로서는 부담이 전혀 없다. 시누 입장에서는 시부모님과의 여행도 불편해하지 않는 며느리를 신기하고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다.(내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거리가 있는 시댁보다 가까운 내 부모가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더라)
시누 또한 개인주의자의 일원으로 본인의 삶을 잘 가꾸고 계신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기 관리도 꾸준히 하시고 틈틈이 친구들과 여행도 떠나시고. 피로에 찌든 워킹맘의 시선으로 볼 땐 골드미스의 삶이 부럽기도 멋있기도 하지만 그녀도 그 삶을 감당하고 꾸려나가는데 고충이 있겠지 싶다.
내가 노력하는 부분이라면 적어도 '시'자라는 타이틀에 가두어 시누, 시부모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나 또한 그들의 생활이 모두 이해되고 좋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들의 성향을 그대로 인정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겠다는 게 나의 다짐이다. 이해가 안 되는 남편의 행동을 볼 때 그가 살아온 환경을 고려해 그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고 오늘도 노력하는 중이다.
10년 뒤에도 시누예찬, 시댁예찬을 할 수 있도록 나도 며느리의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이 미워지면 시댁도 미워지니 그전에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하며 (매번 잊지만) 남편의 고마움을 상기하자고 오늘도 다짐을 한다. 사랑과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매일의 노력이 필요하기에 어려운 것이고 소중한 것이구나. 들어보면 상식 밖의 시댁도 많던데 내가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는 남편과 시댁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