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완고한 신념에 따라 ‘결혼도 나이 순서대로’가 암묵적인 룰이었던 우리 집에 일생일대의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장녀의 결혼 소식만을 기다리시던 부모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실까걱정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느껴지는 이 묘한 해방감은 뭐지?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면 나는 이제 결혼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그동안 말썽하나 안 부리고 부모님의 착한 딸로 충분히 살아왔다. 장녀라는 타이틀로 부모님의 편애를 받으며 특혜를 누리기도 했지만 또한 그 타이틀 때문에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무게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게 되다니. 아니, 결혼뿐 아니라 내동생이 아이의 엄마가 되다니!! 예상치 못한 소식에 많이 놀라실 테지만 사랑 많고 아이 좋아하시는 부모님께서는 기뻐하실게 분명하다. 자식 결혼에 손주까지 생기시다니 겹경사가 아닌가.
예상치 못한 둘째 사위를 맞이하는 부모님께서도 처음엔 달갑지 않으신 듯했으나 순조롭게 결혼을 준비하며 집안에도 이내 웃음꽃이 폈다.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은 항상 언니인 내가 먼저였는데 동생의 결혼준비과정을 보면서 매번 언니가 주인공이어서 서운해하던 동생의 입장도 조금은 헤아리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첫 조카가 생겼고 새 생명의 탄생으로 가족 모두의 관심이 아이에게 쏟아져서 나는 또 한 번의 해방감을 느끼며 어느 때보다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생의 결혼 이후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혼자 집에 돌아가는 내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셨는지 나의 연애와 결혼 소식에 대한 부모님의 질문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결혼은 잠시 미뤄두고 한동안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라고다짐했지만 말 잘 듣는K장녀로 살아온 인생.현실에선 주위의 시선도, 부모님의 압박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뭔가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피)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임용되기 전부터 공무원 휴직제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마음껏 쓰고 싶어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육아휴직은 현재 내 선택지에 없었다. 여러 휴직 사유 중 눈길을 끄는 단어 유학휴직. 자유로워야 할 대학생 시절 나는 공무원시험 준비한다고 어학연수도, 배낭여행도 가보지 못한 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 입사 후 첫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여행의 즐거움에 눈을 떴는데 휴가 내고 다녀오는 짧은 여행 일정도, 부족한 영어실력도 항상 아쉬웠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한동안 머물며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작정하고 알아보니 유학휴직의 조건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부설 어학원에 등록하고 일정시간 이상 수업을 들으면 되는 거였다. 문제라고 한다면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다 쓸 테고 다녀오면 더 먹을 내 나이 정도가 되겠지. 몇 년 뒤 나이는 먹고 돈도 없는 노처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든든한 평생직장이 있으니 나하나 먹여 살리는 거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결혼을 포기하니 새로운 자유를 얻은 듯했다.
어학원 상담을 받고 꿈꾸던 어학연수를 상상하며 주말마다 영어학원을 다니니 혼자여도 행복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아도 되는, 나 혼자서도 충분한 이게 싱글의 삶이구나 싶었다.
내가 연수를 가는 목적은 공부가 아닌 새로운 경험과 현실도피였기에 유학 가서 놀 거리로 나만의 무언가가 있어야겠다 생각했다. 언어는 안되니 예전에 즐겨하던 테니스를 다시 배워서 운동하며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레슨을 등록하고 동호회에도 들어가 열심히 활동을 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취미로 공부와 운동을 즐기는 삶이라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연애와 결혼 말고도 다른 멋진 일상이 많은데 내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자의 때늦은 사춘기였을까.
동호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서로의 직업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운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친구가 되는 곳. 그곳에는 내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인생을 즐기는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서 한 사람을 만났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연하남이었다.
첫인상부터 호감이 갔다. 그런데 내가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는 뭔가 달랐다. 소수의 사람과 조용히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친구도 많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듯 보였다. 나랑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도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래서 더 철저하게 철벽을 쳤다.(더 이상 이별로 상처받기 싫었다)
나: "나는 지금 유학준비 중이야"(누굴 만날 생각이 없어)
그: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누나 인생이니 누나가 선택해야 하는 거고"
나: "우리 부모님은 결혼할 사람을 만나길 바라셔."
그: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내 인생은 아직 좀 불안하잖아. 누나 선택을 존중해."
처음이다 이런 반응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을 염두에 두며 나를 붙잡아두려 들었고 본인들은 다 준비된 듯 굴었다.(그중 아무도 나에게 청혼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편했다. 불안한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니 부족한 내 모습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
부모님이 결혼 압박을 하시는 것도, 그렇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이 사람에겐 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 왜냐고? 나에게 기대하는 게 없어 보였으니까.
유학 준비가 되면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다. 그동안 내가 그리고 있던 이상적 모습이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었는지 조차도 혼란스러웠던 그때, 멀리 떠나 내가 꿈꾸는 삶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때, 이 사람 옆에서는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아도 항상 편안했다.
이렇게 싱글의 특권을 즐기던 시절도 잠시 엄마가 중요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며 서울집으로 찾아오셨다.
엄마: "아빠가.. 올해 안으로 결혼 못하면 서울 집 빼라고 하시네"
나: "무슨 말이야!! 그럼 나 회사는 어떻게 하고"
엄마: "서울에서 마음대로 연애하라고 해도 못하니 고향으로 내려와 선봐서 시집가라고 하셔"
나: "하.. 내가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너무하네. 그리고 나 만나는 사람 있어. 근데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결혼할만한 사람인지 아직 모르겠어"
엄마: "그래? 그럼 집에 한번 데려와봐~ 엄마아빠가 보면 다 알아"
이 이야기를 (어느새 자연스럽게 남자친구가 된) 연하남에게 전했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한번 데려오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결혼생각이 없다던 그가 부모님을 만나 뵙겠다며 의외로 적극적으로 응한다.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다. 결혼 압박을 피해 도피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왜 나는 또 부모님의 말씀에 순응하고 있었던 걸까. 결혼 생각 없이 만나던 이 사람을 집에 데려가는 게 맞을까? 나는 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부모님께 떠넘기려고 하는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