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편
너는 매번 회사로 도피하는 고질적인 루틴부터 깨야 해.
올해 2월 초, 인천의 한 콩나물국밥집에서 들은 말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로부터.
작년(2025년) 말, N번째 회사에서 퇴사한 후 이직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임금 체불, 계약 종료, 직무 변경 등 다양한 이유로 이뤄진 퇴사는 늘 또 다른 회사에 입사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숨만 쉬어도 녹아내리는 통장 잔고,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한 백수라는 지위가 주는 불안함에 매번 회사로 도피해 왔다.
나에게 회사는 지독하게 목을 옥죄는 안식처였다. 매일 아침 눈 뜨면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안정적인 지옥. 상사를 욕하고 야근을 한탄하는 한숨 속에서도 암묵적으로 배어 나오는 정규직의 권력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과연 나의 수동적인 태도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일'보다 '가고 싶은 회사'를 좇아온 나를 매섭게 꾸짖었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하고 싶은 일은 마음만 먹으면 해 볼 수 있다며,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직 준비가 아닌 '나만의 프로젝트'를 한 번이라도 독립적으로 시도해 본 경험이라는 것이다.
새까맣게 탄 내 마음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거침없이 말하는 친구 놈의 주둥이를 비틀고 싶었다. 동시에 흔들렸다. 내 안 깊은 곳에서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의 프로젝트’가 대체 뭔데.
'셀프 브랜딩', '자기 PR' 등을 시도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브런치도 재개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쭉 쓰고(역사, 판타지, 전시회, 박물관, 도서관, 여행, 책, 영화 등등) 이것들을 콘텐츠화 할 수는 없을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에디터, 마케터 관련 직무)을 써보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자기 계발이나 취미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만 내세울 수 있는 매력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확신 없이 내 생각을 공개하고 박제하는 행위가 무서웠고, 늘 그래왔듯 조직 이름 뒤에 숨어 나를 지우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이직과 프로젝트 어디에도 진전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새벽 2시 넘어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때 했던, 지금도 하고 있는 고민을 옮겨본다.
‘정말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
난 그 정도로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당연히 실패하겠지.’
‘괜히 시간 낭비하고 나이만 먹는 거 아닐까? 공채 쓰려면 지금이 막차일 텐데.’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지치고 힘들어서 불확실한 도전을 할 기운이 없어.
입사 지원도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명확하잖아.
공고 확인하고, 지원 반복하기. 명확한 쪽에 투자하는 선택이 당연히 합리적인 거 아니야?’
‘회사가 내 정서적 방어기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정기적인 수입이 있으면 더 안정된 상태로 나를 탐색할 수 있을 거야.
일을 하면서 배우고 쌓이는 것들이 있을 테고, 아이디어도 떠오를 수 있잖아.’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출퇴근만으로 모든 기운이 쭉 빨려 버린단 거 알잖아. 업무 외에 다른 걸 제대로 할 수 있겠어?
회사 밖에서의 시간이 주어진 지금이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최적기가 아닐까?’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없다면, 찾아보면 돼. 고민해 보면 돼. 탐색해 보면 돼.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시도하지 못한다면, 나는 영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고민과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도전하는 과정을 나누는 일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잘 맞을 회사에서는, 홀로 프로젝트를 위해 고민해 본 사람을 오히려 높게 사지 않을까?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고 해도, 분명 이 경험은 가치 있을 거야. 나 스스로에게도, 회사로서도.’
과연 나는 회사 밖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찾을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