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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y 28. 2023

나의 해방일지

아침 6시, 부랴부랴 일어나 밥 하려다가

아! 맞다 오늘 토요일이었지... 크게 안도하며 도로 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남편 출근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간밤에 작업해 놓은 마늘 고추를 냉장고에서 꺼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아서 출근하겠지.

둘째가 아침 안 먹고 놀러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잠에 빠져들었다.


아랫배가 아파서 깨보니 밖에서 비가 오고 있었다.  길길이 날뛰던 감정이 한결 수그러진 걸 깨달았다.

비가 오려고 한바탕 날궂이를 한 걸까.


아들과 아점을 먹고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어제 빼먹은 글쓰기를 했다.

오늘차 글을 마저 쓸까 아님 씻을까 고민하다가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나의 해방일지"--

유튜브 쇼츠에서 인상 깊게 봤던 손석구 님 연기가 궁금해서 틀었는데 첫회부터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다 내가 좋아하는 연기자들과 스토리와 배경과 음악까지... 푹 빠져서 보았다.

왜 이 드라마를 이제야 보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그때 한창 나의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를 챙겨볼 여유같은건 없었던거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하며 어렵게 어렵게 용기를 냈었다. 40년 만에 맞은 해방에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다.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란 걸 아직 나는 그 길 위에 있음을, 나의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음을 요즘에야 깨닫는다.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와닿는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드라마 속 일상들이 내 것 인양 공감된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오는 염미정의 대사를 들으며  친구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친구는 걱정스럽게 안부를 전했었다.

괜찮은 거냐고.

그냥 그렇지 뭐. 시원치 않은 대답에 친구는 그랬다.

"너무 미련하게 참지 마. 혹시라도 갈데없음 찜질방 가지 말고 서울로 와. 내가 있잖아."

"아.. 그거! 그 찜질방은 벌써 8년 전 일이야."

"아 진짜?"

우리는 킥킥대며 웃다가 서로를 공감하며 위로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긴 통화 끝에 친구는 또 한 번  그런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며 곧바로 서울로 오라고.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하루종일 되뇌었다.




과연 나는 한 번이라도 채워진 적이 있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친구의 한마디가 위안이 된다.


2회도 채 안 봤는데 저녁때가 되었다.

어김없이 밥 할 시간은 돌아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미리 사다 놓은 닭갈비에 채소 몇 가지를 썰어서 넣고 볶기 시작했다.



#나의해방일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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