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급작스레 퍼붓지도, 오락가락하지도 않는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양으로 하루종일 내리는 이런 비가 좋다.
적당히우울하고 적당히 게을러도 크게표 나지 않는다.
오전 내내 영화배우 봉태규 님의 에세이를 읽으며 훌쩍이다 오후엔 '나의 해방일지'를 넋 놓고 보았다.
구 씨(손석구)의 검정봉지 속 파란 소주병이 지난 수십 년간 내가 지겹게 봐온 그것과 같은 건데, 그래서 그걸 다 모아놓으면 몇 트럭은 나오고도 남을 텐데. 늘 악다구니를 쓰며 치가 떨리게 증오했던 물건이 또 이렇게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누가 들고 다니냐에 따라 다른 걸까 ㅎㅎ
퇴근한 남편의 양손을 유심히 바라봤다.
한 손에는 상추박스와 마늘고추가 들려있고 다른 한 손에는 하얀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파란색 소주병이 아닌 하얀 병에 든 '처음처럼'이었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있지도 않았다. 하긴 요즘에는 비닐봉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으니까.
저녁을 차려주고 식구들이 식사하는 사이 나는 주방 한 구석에서 상추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몇 개 하지도 않았는데 비닐팩이 떨어졌다. 귀찮지만 사러 나가야 한다. 우산을 챙겨 들고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비닐팩 2개 집어 들고 뭔가 그냥 나오기 허전해서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맥주 냉장고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맥주 마신 지가 한참 된 것 같다.
맥주는 참 다양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마시지만 매번 고민한다. 뭘 마실까?
새로운 걸 먹어보고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세상에!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것이 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 행사하는 맥주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맛에 대한 리뷰를 저렇게 깨알같이 써놓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