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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Feb 02. 2023

전업주부 8개월 차.... 고비가 찾아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엄마, 머리 빗겨줘!"

딸의 호출에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거실로 나갔다. 거울 앞에 대기 중인 딸에게서 빗을 받아 들고 엉킨 딸아이 머리를 빗기며 거울에 비친 남편을 바라보았다.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갔다 왔는지 파카차림에 모자를 쓴 채로, TV 앞 테이블에 몸을 반쯤 기댄 채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폰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나는 이틀째 보고 있다.

가게 직원은 잠수 중이고 사장은 저러고 있느라 가게는 이틀째 문을 닫은 상태다. 


거울 속에서 아무리 레이저를 쏘아봐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게임에 빠져있는 듯하지만 그의 영혼 게임에 있지 않다. 몸만 덩그러니 있을 뿐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20년 넘게 살다 보니 그의 몸짓만 봐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같이 장사할 때도 나는 그의 뒷모습만 보고도 지금 얼마나 좀이 쑤시는지, 어디론가 막 휘젓고 다니고 싶어 하는지를 느낀다. 그래서 화장실을 하루에 수없이 들락거리며 가게를 비우는 남편이 죽도록 밉다가도 한편으로는 또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도 했었다.


집에서도 그는 누군가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 나갈 기세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손님처럼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도 가끔 영혼이 제자리를 찾은 날이면  요리를 해준다. 직업이  요리사라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영혼 없이는 그것도 지 않은가 보다.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프라이와 함께 간단히 상을 차렸다. 남편은 그 차림 그대로 상에 마주 앉는다.

핸드폰 대신 리모컨을 잡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멈춘다.

그러나 밥 한 공기를 채 먹기도 전에 프로가 끝나고 남편은 또 리모컨을 들고 채널탐색에 나섰다. 이번엔 '도시어부'다. 얼굴표정이 밝아지며 그제야 다시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까지 했지만 TV앞에서 요지부동인 남편은 오늘도 가게에 나갈 생각이 없는듯하다.


"여보! 그만 가게에 나가자."

 하며 언제나 그랬듯 또 내가 앞장서야 하는 걸까? 낚시하는 자연이 되는 게 로망인 저 남자를 끌고....?

이제는 정말이지 자신이 없다.




가게일에서 손을 떼고 전업주부가 된 지  8개월이 넘었다. 키만 한 기다란 방수앞치마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지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호객행위를 하던 나는 이제 시장에 없다.

더는  남편 찾아 삼만리를 안 해도 된다.

말도 안 되는 짜릿한 해방감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가게는 자연스럽게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남편의 불안정한 모습이 가끔은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아슬아슬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안함속에서도 나는 꿋꿋이 글을 쓴다.


......


남편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가게는 3일째 문이 닫

혀 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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