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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ug 05. 2023

내가 아는 감정 _ 두려움


내 안에 작은 아이가 산다.

그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 하고 있다.

움추러든 어깨에 눈은 화등잔만 하게  뜨고 연신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선이  불안에 떨고 있다.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을까..

누군가 크게 소리라도 지르면 당장 까무러칠듯한 표정이 되어 움추러든 몸은 더 작게 쪼그라든다.

간이 콩알만 해져 숨도 못 쉬고 죽은 듯이 상황을 지켜본다.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상황이 끝날 때까지 공포에 휩싸인 채 그대로 멈춰있다. 얼음처럼.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 꼭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누군가가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처럼, 그래서 사소한 잘못이라도 하면 크게 야단맞고 혼나야 할 것처럼 아이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의 촉을 곤두세워 자신의 행동을 언제라도 , 빛의 속도로 빠르게 수정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지뢰밭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걸까...






아빠를 향한 엄마의 악에 받친 소리...

가끔은 엄청 즐거워 보였던 엄마의 모습과 커다란 웃음소리,

그 사이에서 아이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엄마의 기분에 맞추려 어린 동생을 돌보기도 하고 방을 닦기도 하고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엄마에게 혼나고 자주 맞다.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나면 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엄청난 태풍이 닥쳐왔고 아이의 집은 산산조각이 났다.


겁에 질린 아이를 구해준 건 조부모였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을세라  예의 없는 행동이나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서 아이는 과하게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밥을 잘 못 먹는 아이가 못마땅해 아이의 삼촌(아빠 막냇동생)은 늘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꼭 지 미를 닮아서!"


아이의 거슬리는 행동은 모두 저 말에 해당했다.

아이의 엄마는 남편을 잡아먹은 나쁜 년이란 꼬리표가 되어 끈질기게 아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닮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행동 하나하나, 말투며 웃음소리까지... 의도하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꼬리표는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아이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어떤 날은 아이도 변명을 하고 싶어 자기 의견을 말할라치면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꾸냐고  사정없이 혼나곤 했다. 속이 상해서 눈물이라도 보이면 그것조차 허용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웃음도 말도 잃어갔다.

그러자 왜 표정이 그 모양이냐고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며.. 뒷집 아이 좀 보고 배우라고 했다. 저렇게 싹싹하고 생글생글 웃고 다니니 얼마나 보기 좋냐고...

그래서 아이는 그  뒷집 아이랑 친하게 지내며 의식적으로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 즐겁지 않아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여덟,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나게 되었다. 아이는 삼촌과 단둘이 지내게 되었다. 황량한 벌판에 또다시 버려진 느낌...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버려진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이는 생각했다.

집을 뛰쳐나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밖의 세상은 위험하다며 아이의 삼촌은 절대로 허락을 하지 않았다. 정작 위험한 곳은 밖이 아님을 아이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시골 아낙처럼 밭일하고 집안 살림하며 우울하고 고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힘든 건 사람들 가끔 아이삼촌 색시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는 것.  품앗이를 할 때에도 아이의 삼촌은 꼭 아이도 함께 남의 집 일을 하길 원했다.

하기 싫은 내색을 해도 소용없었다.

후폭풍이 무서워 억지로  남의 집 밭일을 도왔다. 어설프게 거절하고 괴로우느니 차라리 두 눈 질끈 감고 일하고 오면 마음은 편했다. 내가 희생하면 두루 평화가 유지된다는 걸 아이는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누구를 거절한다는 건 상상이상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우므로.

생애 가장 슬프고 절망적인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



아이는 아마도 여전히 그곳에 있는듯하다.

두려움과 공포를 친구 삼아 강같은 깊은 슬픔을 가슴을 지닌 채 말이다.

나는 과연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말하지 못한 그 커다란 두려움은 그곳에 남겨놓고 말이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두려움 #공포 #내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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